와인과 사진이야기

토목기술사인 사진작가 다람이 인생3막에 농부가 되어 직접생산한 포도로 정성드려 빚은 열정과 낭만의 와인 그리고 사진이야기

Achimmaru winery

Portfolio of my life/여행후기______

IIII. 오스트리아 빈_성스테판성당/쉔브룬궁전(4/4)

daram93 2006. 8. 24. 08:50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도시 비엔나

 

8월20일 아침부터 일찍 서둘러 프라하를 떠나 오스트리아 빈으로 들어왔다. 역시 고속도로로 평균 시속

170Km 씩 달려서 3시간(am 11시30분)만에 빈 최고의 번화가 케른트너 거리에 도착했다. 다음부터는 유

럽을 여행할때 자동차를 이용하지 말고 열차 또는 다른 교통수단을 이용해야 겠다. 목숨을 건 질주의 유

혹을 뿌리칠 수 없기 때문이다.

 

 

 

위 사진은 체코에서 국경을 지나 오스트리아로 들어 오니 넓은 들판에 풍력 발전기가 쉼없이 돌아가고

있는 풍경이다. 바람개비가 상당히 많은 것이 장관이다. 지방의 조금만 도시는 이 풍력발전기로 전력

수요를 충당한다고 한다.

 

"빈"은 동유럽 도시들 중에 가장 번창한 도시 중에 하나이다.  인구는 약160만명 이고 영어로 '비엔나'라

고 하며 다뉴브(도나우)강 상류 우안에 자리잡은 유럽의 고도로써 중부 유럽의 경제, 문화,교통의 중심지

이다.  수백년 동안 유럽을 지배하던 대제국의 수도 였다고도 한다. 

 

   

 

위 사진은 빈 거리의 풍경들이다. 맨 우측사진은 거리에서 하얀 의상을 입은 젊은이가 새소리를 내며

판도마임을 하는 모습이다. 앞에 놓인 하얀 통에 동전이 쌓이고 있다.  거리 풍경은 상당히 세련되었고

현대식 간판과 건물들이 늘어서 있다.

 

   

 

좌측 사진은 광대가 거리에 나와 1인극을 하고 있을 때 지나는 행인이 사진을 찍자고 하는 모습이다.

오페라를 광고하기 위한 퍼포먼스라고 한다. 맨 오른쪽 사진은 가운데 무릎을 꿇고 앉은 자가 성 스테판

성당을 향해 열열히 기도하고 있는 모습이다. 빈의 거리풍경은 정겹고 즐거운 모습으로 내게 다가 왔다.

 

빈은 3종류의 취향에 따라 여행테마를 선정한다고 한다.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모차르트의 향기

를 ... , 건축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유럽 건축예술의 백미를 ... , 그리고 역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유럽

최고의 왕가였던 합스부르크의 유적을 찾아서 여행을 한다고 한다.

 

우리 일행은 오늘 중으로 헝가리 부다페스트로 돌아가야 하기 때문에 빈에서의 시간은 5시간 정도 밖에

없었다. 그래서, 빈에서 가장 볼만한 유적지 두 곳만 들리기로 하고 여행 안내서를 찾아 보았으나 모두

비슷비슷해서 어디를 가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프랑스 비극의 왕비 마리 앙뜨와네뜨의 친정이라는 쉔브룬 궁전과 빈의 상징이라고

하는 성 슈테판 성당을 둘러보기로 결정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데 우리는  성 슈테판 성당 옆 골목

에 있는 일식집에 들러 도시락으로 점심을 해결하고는 곧 바로 성스테판 성당으로 들어 갔다.   

 

◆ 성 스테판 성당

 

 

 

성 스테판 성당은 하늘을 찌를 듯한 두개의 탑과 웅장한 모습으로 우뚝 서 있다. 지붕에 모자이크 문양이

독특해 보였고 오랜 세월을 견디어 오느라 색상이 검게 변색되었으나 아름다운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오스트리아 최대의 고딕양식 건물이다. 

 

첨탑은 137m이고 지붕은 25만개의 타일로 모자이크 문양을 내었다고 하며 엘리베이터를 타고 탑으로

올라가면 성당의 화려한 지붕과 구시가지가 한눈에 들어온다고 한다. 1359년에 완성되었는데 공사기간이

65년이나 걸렸다고 한다.  

 

   

 

성당 내외벽에 붙어 있는 벽화 장식이며 오랜 세월을 견디지 못해 훼손이 되고 있었다.

 

   

 

외벽의 아름다운 조각과 스테인드 글라스의 모습이다. 경탄을 금 할 수가 없다.

 

 

성당 안에 파레스코화는 16세기 말에 제작되었다고 하며 셀 수 없이 많은 벽화가 있다. 지하에 그림까지

1,000점이 넘는다고 한다.

 

   

 

내부의 형형색색의 화려한 벽화와 장식들이다. "아~"하는 탄성이 저절로 나온다. 성당 내부 장식에 매료

되어 넋을 잃고 말았다. 유럽의 여러 성당을 다녀 보았지만 그 느낌이 너무나 다른 것 같다. 

 

성 스테판 성당은 모차르트의 결혼식과 35세의 나이로 요절한 모차르트의 장례식이 있었기 때문에 더욱

유명하다고 한다. 그 의 인생에서 가장 큰 부분인 결혼과 죽음이 이 곳에서 이루어 졌으니 모차르트와는

큰 인연이 있는 성당이다.

 

그리고, 1450년에 만들어진 지하묘지에는 흑사병으로 죽은 약 2,000구의 유골과 합스부르크 왕가의 유해

가 보관되어 있다고 한다.  

 

 

 

   

 

케른트너 거리는 중세풍 건축물과 현대식 건축물이 혼재되어 세워져 있다.  세번째 사진은 건물외벽에 벽

화를 가득 채워 그려 놓은 건물이다. 이 들은 생활 그대로가 예술인것 같다. 맨 우측사진은  최근에 지어

진 건물처럼 깨끗하고 상점 간판이 즐비하게 걸려 있다. 프라하 구시가와는 상반된 거리 풍경이다.

 

점점 옛 모습을 잃어 가는 것 같아 아쉽지만  혹자는 이러한 거리의 풍경을 가르켜 "과거와 현재가 공존

하는 도시 비엔나"라고 말한다.  공감이 간다.

 

 

 

 

◆ 쉔브룬(SchonBrunn) 궁전

 

 

우리는 케른트너에서 지하철을 타고 쉔부른 궁전으로 이동하는 도중 지하철에서 한국인 커플를 만났다.

너무나 반가워 어디서 왔냐고 물으니 서울에서 왔다고 했다. 그런데 그들이 더 반가워하는 거였다. 관광

안내책자를 잃어버려 지도도 없이 맨몸으로 쉔브른궁전을 찾아가고 있었다. 우리도 한권 밖에 없는 안내

책자라서 줄 수는 없었고 도착할 때까지 읽어 보라고 빌려 주고는  간단히 여행코스를 일러 주었다.

사실 나도 잘 모른다. ????

 

쉔부른 궁전에 도착했다. 입장표는 3가지 종류가 있었는데 궁전의 방을 30여개실 정도만 돌아보는 코스,

45개실 모두를 관람하는 코스, 45개실 모두와 정원까지 돌아보는 코스가 있었다. 난 욕심에 풀코스

(Grand Tour)로 돌아보는 표를 샀다. 14.90유로화를 주고 구입했으나 나중에 무척 후회했다.

 

왜냐하면, 아래 사진의 정원은 무료로 입장이 가능하고 사진에는 보이지 않지만 좌우측 숲은 거대한 정원

을 꾸며 놓았는데 얼마나 큰지 하루종일 돌아 보아도 다 돌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한시간 밖에 없는

나에게는 무리한 것이다.. 이래서, 사전정보는 매우 중요하다.

 

 

 

 

 

쉔브룬 궁전은 합스브르크 왕가의 레오폴드 1세 여름별궁으로 지어졌는데 공사 도중 사망하여 중단되었

다가 50년 후인 테레지아 여왕에 의해 재건축 되었다.

 

쉔브룬이란 '아름다운 샘'이라는 뜻이며, 1619년 마티아스 황제가 사냥 중에 샘을 하나 발견하였는데 이

샘이 너무 아름다워 '아름다운 샘이다'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 하며,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에 견줄 만

큼 아름다운 궁전이라고 한다.   

 

 

 

이 궁전은 18세기 중엽 마리아 테레지아 여왕에 의해 현재와 같은 모습으로 완성된 것이며, 이 여왕은 18

세기 유럽 최고의 권력자였지만 성격은 매우 소탈했다고 한다. 여왕은 프랑스적인 취향이 짙어 베르사이

유 궁전을 본떠 쉔브룬 궁전을 건축했다고 한다.

 

쉔부른 궁전은 바로코 양식의 건축물이고 내부의 가구 및 기타 설비는 당시 최신 유행이던 로코코풍으로

써 쇠퇴하기 시작하는 바로크 양식의 가장 특징적인 모습을 잘 보여 준다고 한다.

 

위 사진은 궁전 입구에서 밖으로 바라 본 전경이고, 우측사진은 내측을 바라 본 궁전의 전경이며, 테레지아

옐로우라고 불리우는 황색 외벽은 왕가의 번영을 상징하는 듯 하다. 여기서부터 압도되기 시작했다.  

 

   

 

   

 

표를 개찰하고 2층으로 들어서면 화려하면서도 따스하고 아늑한 로코코 양식의 분위기에 완전히 압도된

다. 그리고,  부귀영화의 진수를 보여주는 궁궐의 비밀스런 방들이 하나씩 공개 된다.

 

 - 황제가 손님을 맞았다는 호두나무로 벽을 장식한 방

 - 중국 도자기로 장식하고 황금 테를 두른 거실

 - 남아메리카에서 수입한 장미나무 뿌리로 치장한 사치스런 방

 - 프레스코 그림이 압권인 연회실 -> 위 사진 중에 아래쪽 좌측사진 2장

 - 마리아 테레지아의 거실인 비외 라크롬

 - 모차르트의 오페라 "마적"의 공연장면 유화가 있는 '거울의 방'

 - 나폴레옹 전쟁 후 '빈' 회의가 열렸던 역사적인 방

 - 마리아 테레지아가 남편 프란츠 슈테판이 죽고 난뒤 혼자 외로움과 고독을 즐겼다는 검은색으로 치장

   된 방

 - 나폴레옹 2세가 사용했다는 '회상의 방'

 - 크리스탈 샹들리에와 금박장식으로 된 침실, 식당 등등

 

방에 대한 상세한 내용은 다음 주소를 클릭하면 자세히 설명되어 있다

     <<  http://blog.naver.com/df1208/20018050713   >>

 

 

프랑스 루이 16세의 왕비였던 마리 앙뜨와네뜨는 테레지아 여왕의 딸이다. 모차르트가 6세때 거울의

방에서 연주를 마치고 마리 앙뜨와네뜨와 놀면서 자신의 아내가 되어 달라고 청혼을 했다는 재미 있는 일

화가 전해져 온다.

 

마리 앙뜨와네뜨는 대제국의 공주답게 세상물정을 모르고 사치와 허영심이 강했으며, 프랑스 혁명 때 38

세의 나이에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진 비극의 왕비였다.  

 

 

궁전정원 언덕위에 있는  건축물이며, 이 곳에서 보면 궁전의 모든 전망이 한눈에 들어온다. 1747년 프로

이센 전쟁때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세운 글로리에테(Gloriette)이다. 지금은 내부에 카페테리아가 있다.

 

중앙 광장을 따라 올라오지 않고 우측 숲 정원으로 방향을 잡아 오던 중 도저히 이 곳까지 올라 올 시간이

부족하였다. 그래서 중간에 중앙 분수대로 나와 곧장 올라 왔지만 30분이 더 걸린 것 같다. 숲의 정원은

광활하다고 표현해야 맞을 것 같고 도저히 걸어서는 돌아볼 수가 없다. 스쿠터라도 하나 있어야 겠다.

 

   

 

우측의 사진은 궁전 입구에 들어서면 좌우측에 하나씩 있는 분수이다. 두번째 사진은 숲속 정원의 하나이

며 나무를 벽처럼 깍아 조성했는데 확대해서 보면 좌측에 조그마한 사람이 조깅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얼마나 큰 나무인지 알 수 있다.

 

이 숲속 정원에는 미로정원등 다양한 테마가 있는 정원이 있다고 한다. 이를 둘러보러 들어 가다가 되돌

아 나왔다. 정말 아쉬운 일이다. 세번째 사진은 숲속에 있는 연못이다.

 

맨 우측 사진은 아래 광장정원 끝 지점에 있는 분수대이며 조각으로 잘 치장되어 있다.

 

   

 

위 사진은 글로리에테 건물에 있는 조각상이고 글로리에테에서 바라 본 숲속의 길이다. 글로리에테 전

망대로 올라가는 계단 벽에는 전부가 낙서로 꽉 메워져 있다. 오른쪽 사진은 여기서 발견한 한글이다.

"일산사는 현경 댕겨가여 2006.7.6"이라고 쓰여 있다. 나보다 꼭 한달 먼저 왔다 갔으나 왠지 반갑지만은

않다.

 

"현경씨! 한글이 외국 나와서 고생하는 구먼 유~, 여행에 고달프지는 않는가 벼~"

 

 

화단정원 정면에서 바라 본 쉔브룬 궁전, 날이 흐리고 어두워 디카 노출 조정이 안 맞아 선명하지는 않지

만 화단의 원색 꽃들이 궁전과 잘 어울려 아름다운 궁전이라는 말은 손색이 없었다.

 

 

 

궁전 광장에 조성해 놓은 화단은 기하학적인 아름다움을 연출해 놓았고 이름도 종류도 알 수 없는 무수히

많은 꽃들이 원색의 모습으로 활짝 피어 있다.

 

이 화단이 끝나는 지점에 "쉔브룬(아름다운 샘)"이 있고 바로크 양식으로 장식되어 있다. 실제 샘인지

분수인지는 알 수가 없다. 이 정도의 분수는 많이 있지 않은가!!! 

 

언덕 위 글로리에테에서 바라 본 쉔브른 궁전, 현재 보이는 부분은 궁전 전체의 20%도 안되는 것 같다.

좌우측 숲이 모두 정원이다. 볼만한 것들이 제법 많다고 하지만 오늘은 이만 내려 가야 겠다. 궁전만 둘러

보고 나간 일행에게서 빨리 오라고 재촉하는 핸드폰 벨이 울리고 비도 한방울씩 떨어지고 있다.

 

프라하에서 부다페스트로 돌아가는 길에 비엔나에 들려 점심 먹으며 케른트너 거리구경이나 하고 돌아

가려 했는데, 이 정도만 보아도 본전은 된다고 스스로 위안하면서 궁전을 빠져 나왔다.

빈은 정식으로 다시 한번 방문하겠다는 마음을 다지며, 우리는 비가 억수로 쏟아지는 시내를 가로질러

부다페스트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