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과 사진이야기

토목기술사인 사진작가 다람이 인생3막에 농부가 되어 직접생산한 포도로 정성드려 빚은 열정과 낭만의 와인 그리고 사진이야기

Achimmaru winery

Portfolio of my life/여행후기______

II. 백탑의 황금도시 프라하(2/4)

daram93 2006. 8. 23. 14:35

 

 A. 중세도시 프라하(PRAGUE)

 

부다페스트에서 휴일을 맞은 우리는 프라하로 주말여행을 떠났다. 자동차로 5시간 정도 달려서 도착

하였으나 생명을 건 여정이 아닐 수 없었다. 부다에서 프라하까지는 고속도로가 있어서 슬로바키아를

거쳐 체코로 들어왔다. 고속도로는 드넓은 벌판에 거의 직선이어서 평균 시속 170Km로 달렸고 차가

많지 않아 200km/h를 넘나드는 속도로 달리기도 했다..

 

고속도로는 보수를 많이 해서 노면이 좋지 않아 승차감이 떨어 졌지만 그 보다도 차가 흔들릴 때 마다

생사가 눈 앞에서 왔다갔다 했다. 그래도 우리보다 더 빨리 가는 차들이 많았다.

 

프라하는  인구 120만명 정도가 거주하고 있으며 영어,프랑스어로는 프라그(prague)라고 부른다. 체코

최대의 정치,경제,문화의 중심지이며, BC 4000년경부터 사람이 거주 하였고 5~6세기에 슬라브인이

들어 왔다고 한다.

 

 

프라하는 동유럽 여행의 하이라이트라고 하며, "북로마" 또는 "백탑의 황금도시"라는 애칭을 가지고

있다. 도시 전체에 흐르는 중세 유럽의 모습을 그대로 잘 간직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 구시

가지를 돌아보면 중세 건축의 묵직한 분위기가 중세로 와 있는 느낌을 안겨 준다.

 

위의 사진은 블타바강에서 프라하성을 바라 본 전경이다. 블타바강은 독일 명칭으로 몰다우강이라

고 한다. 강폭은 1,300m 내외이고 보헤미아 산맥고지에서 발원하여 남동쪽으로 흘러 프라하 시가를

관통하고 엘베강과 합쳐진다.  전장 435km이다.

 

   

 

위 사진들은 시내 풍경이며 왼쪽부터 Stefanikuv 다리의 전경이다. 가운데 사진는 2차대전 종전 기념비

이고 우측 사진은 트램이라고 불리우는 전차이다. 이 곳에서 트램을 타고 프라하성으로 올라 갔다. 

 

프라하는 우리에게 '프라하의 봄'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리고, 최근 SBS의 드라마 '프라하의 연인'

으로 아주 친숙해진 도시이다. 프라하의 연인은 뒤에 다시 언급하기로 하고 프라하의 봄에 대해서

잠시하나 짚고 넘어가자.

 

"프라하의 봄"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정작 제대로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무척이나 낭만적으로

들리는 "프라하의 봄(Prague Spring)"이라는 이 말은 두가지 의미를 지니고 있다.

 

하나는 1968년 위로는 최고위층 정치인들, 아래로는 작가와 예술가, 학생이 주축이 되어 시작된 자유

화 운동을 일컫는 상징적인 의미다. 2차대전 이후 공산화된 체코는 소련의 외압과 정치상황을 겨울이

라 하였고 이로부터 벗어나려는 지식인들의 민주화, 자유화 요구가 받아드려진 것을 봄에 비유하여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다른 하나는 5월에서 6월까지 이어지는 체코 최대의 음악 축제인 프라하 국제 음악페스티벌의 공식

명칭이 "프라하의 봄"이다. 이 두가지 의미 모두는 혹독한 겨울을 이기고 새로운 희망을 추구하는

체코인들의 역사와 문화를 상징하고 있다. 

 

   

 

 

 

언덕 아래서 트램을 타고 프라하성 후문에서 내려 우리는 벨베데르(Belveder:왕비의 여름궁전)을

들렸다. 좌측사진이 여름궁전이고 페르디난드 1세가 부인 앤여왕을 위해서 1564년에 건립했다. 이태

리를 제외하고 가장 아름다운 르네상스 시대의 건축물이며, 이 건물 정원에 노래하는 분수가 있다.

 

우측사진 중앙에 있는 분수를 말하며 이 분수는 실제 노래를 하는 것은 아니고, 중간 물받이 밑에 귀을

대고 조용히 들으면 음악을 연주하는 소리가 들린다. 분수의 물받이 재질이 금속이고 원형으로 제

작되어 물이 떨어질때 울림현상이 일어나는 것이다. 물이 떨어지는 위치와 양이 달라 조금씩 다른 소리

를 내는데 마치 음악을 연주 하는 것 같다. 조용히 들어보니 신기하게도 많이 들어 본 음악을 연주하는

것 같았다.

 

두번째 사진은 황금소로에 있는 백탑의 후면 전경이다. 황금소로는 성 아래에 프라하성을 지키는 병

사들의 막사로 사용하기 위해 건설되었으나 루돌프2세 때인 16세기 후반 연금술사와 금은세공사들

이 살면서 황금소로라 불리어 졌다고 한다. 성 입구를 돌아서 나오면 좁은 골목길이 나오는데 몸을

구부리고 들어가야할 정도의 작은 집들이 늘어서 있다. 

 

위 세번째 사진을 들여다 보면 건축물의 색상이 다양하고 아기자기한 맛을 느낄 것이다. 어떤이는

이를 가르켜 파스텔톤의 동화 같은 거리라고 표현 했다. 그래서 파스텔톤 황금소로 입구에서 한 컷

남겨왔다.

 

이 곳을 더욱 유명하게 만든 것은 "변신"의 작가 프란츠카프카(Franz Kafka)가 그의 여동생 집인

황금소로 22번지에서 글을 썼기 때문이라고 한다. 작가의 영감과 우수가 서려있는 거리는 낭만이

넘치는 것만 같았다.  

 

 

              

 

여름궁전의 넓은 정원을 돌아 나오면 흰색 벽화가 그려진 건물과 만난다. 어디서 많이 본 듯한 그림

처럼 느껴진다. 관심있는 사람은 다 알것이다. 미술관련한 잡지나 화보에 자주 등장하는 그림이다.

 

이 건물은 귀족들의 게임장(Ball-game Hall) 이며 르네상스시대의 건물로써 1567~1569년 사이에 건축가

Bonifac Wohlmut 에 의해서 지어졌다. 벽이나 기둥을 긇어서 벽화를 만드는 것을 그레피도우(Graffito)라

고 하는데 이 그레피도우는 신화 또는 우화를 그려 놓았다.

 

 

 

프라하성

 

 

 

프라하 성은 건축의 도시 프라하의 심장이며 프라하 관광의 핵심이라고 한다.  프라하성은 로마네스크

양식에서 고딕과 르네상스, 바로크, 네오고딕까지 천년 이상의 건축사의 변천을 보여 준다고한다.

 

프라하성은 870년부터 수차례 변천을 거쳐 14세기 카를4세 때 현재와 같은 모습으로 건축되었다.

1948년 이후부터 대통령 관저로 사용되고 있으며 정문에는 근위병이 지키고 있다. 

 

  

 

성은 길이 570m, 폭 128m이며 현존하는 중세양식의 성 중에서 가장 큰 규모이다. 사진은 흐라트차니

광장에서 좌우측 건물을 찍은 것이다. 좌측사진은 Schwarzenberg 궁전이고 외벽은 그레피도우(

graffito) 장식으로 프라하의 왕궁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왕궁이며 1545-1563년에 건축되었다. 우측사진

건물은 왕궁(Archbishop's Palace)으로 바로크 양식이다.

 

  

 

좌측의 사진은 프라하성의 전경이고 가운데 사진은 성의 마리아스문에 설치된 조각상이다. 우측 사진

은  그 중 하나인데 오스트리아인이 체코인을 핏박하는 장면이라고 한다. 왜 이런 잔인한 동상이 성입

구에 설치되었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틀림없이 깊은 사연이 있을 것 같다.

 

   

 

좌측 사진은 성 남쪽의 전경이고 가운데 사진은 근위병이 교대하기 위해서 걸어 나오는 모습이다.

흐라트차니 광장 한쪽 그늘에서는 거리의 악사들이 연주하고 있었다. 잠시 그들의 연주를 들으며 걸음

을 멈추고 쉬어 갔다.

 

 

                        

 

위 사진은 성 안에 있는 성바츨라프예배당이다. 황금색 문양과 그림이 화려하고 호화스럽다. 왕가의 영화

로움을 한눈에 알 수 있게 한다.

 

 

 

성비트 대성당

 

 

 

성 비트 대성당은 프라하성 중앙에 있으며 프라하에서 가장 아름다운 성당으로 1344년 카를4세에 의해

건축되었으며 1929년에 완성된 긴역사를 가지고 있다. 이 성당은 처음에는 고딕양식으로 건축되다가

르네상스양식, 바로크양식 그리고 1929 신고딕양식 등 복합된 형태의 건축양식으로 지어 졌다. 중세

의 건축 양식이 한데 모여 아름다운 모습이 되었다고 한다.

 

 

 

성비트 성당은 국왕 바츨라프1세가 고결한 군주로서 살다가 929년 그의 동생 볼레슬라브에게 암살

당하는 사건이 일어 났다. 그런데, 그의 무덤에서 기적이 일어 났다는 소문을 듣고 이에 놀란 암살자가

932년에 바츨라프의 유해를 이 성당에 옮겨와 안치 했고, 그 후부터 보헤미안의 수호성인으로 추앙

받았다고 한다. 그래서, 성비트 성당은 오랫동안 순례지가 되었다. 

 

참고로  "보헤미안(Bohemian)"이란 말은,  체코의 보헤미아 지방에 유랑민족인 집시가 많이 살았는데

15세기경 프랑스인은 집시를 보헤미안이라고 불렀다. 19세기 후반에는 사회의 관습에 구애받지 않는

방랑자, 자유분방한 예술가, 문학가, 지식인들을 가르키는 대명사가 되었다고 한다.

 

  

 

위 사진의 둥근 원형창은 모자이크 글라스이다. 좌측의 사진은 밖에서 본 모습이고 가운데 사진은 건물

안에서 본 모습이다. 햇빛이 투영될때 모자이크의 형형색색의 빛이 발하여 탄성이 나온다. 우측의 사진

은 왕의 대관식때 사용하는 방으로 왕관등이 보관되어 있다. 실제 볼 수는 없다.  

 

  

 

좌측사진과 가운데 사진은 성당 내부의 정교하고 아름다운 건축물이며, 우측의 사진은 성당 외벽에

그려진 천당과 지옥에 관한 그림이다. 그림에서 좌측은 천사가 죽은 자를 깨워서 천당으로 인도하는

것이고, 우측의 그림은 죄지은 자가 악마에게  끌려 지옥으로 가고 있는데 천사가 칼을 휘두르며 죄

지은 자를 구하고 있는 장면이다. 이는 카톨릭교 구원의 신앙을 의미한다고 한다. 그림을 클릭하면

확대해서 볼 수 있다.

 

 

                         

 

위 사진의 스테인드 글라스는 환상적인 색채로 보헤미안 특유의 푸르고 붉은 유리공예의 정수를 보여

주고 있다. 좌측 사진의 글라스는 그 제작 기법이 특유하고 문양도 흉내내기 어려워 세계적인 작품이라

고 한다. 체코의 화가 알폰소 무하의 그림으로 1936년에 만들어 졌다.

  

 

  

 

성당을 돌아 나오면 뒷 편에 성당 건축방법을 알리는 문서와 실물 기구를 제작해 놓았다.

 

 

시내전경과 거리풍경 

 

 

 

 

프라하 성에서 내려다 본  전경은 도시 전체가 한눈에 보였고 붉은 지붕의 집들이 빼곡히 채워져 있다.

푸른 하늘과 맞다은 풍경이 장관이다. 

 

  

 

프라하성에서 좁은 골목 길을 따라 카를교 방향으로 내려 오면서 거리와 건물풍경을 촬영했다. 거리

풍경은 고풍스럽고 환타지 세계를 걸어 나오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고, 금방이라도 얄굳은 요정이 나

타나 말을 붙일 것 만 같았다. 

 

가운데 사진은 마리오네트(Marionette) 극장 입구이며 "DON GIOVANNI"라는 인형극를 공연한다고

한다. 마리오네트란 실로 매달아 조작하는 인형극을 말하며 르네상스 때부터 19세기에 걸쳐 유행하였

다고 한다.

 

 

 

                                             

 

프라하 성을 내려오다가 찍은 사진이다. 무얼 기념하느라고 세운 탑인데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혹시

전염병(흑사병?)이 끝나고 그 교훈을 잊지 않기 위해 세운 탑 같다. 맞는지 모르겠다.

 

 

  

 

카를교 주변 거리의 정겨운 풍경이다. 마리오네트 인형을 판매하거나 화가들이 그린 풍경화을 거리에서

팔고 있다. 

 

 

카렐교(Karluv Most)

 

 

카렐교는 블타바강 서쪽의 왕성과 동쪽의 상인거주지를 잇는 최초의 다리로 카를4세(1346~1378) 때에

건설되었기 때문에 카렐교라 붙여 졌다. 동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돌다리로 현존하는 유럽 최고의 다리

로 꼽힌다. 길이 520m, 폭 10m의 보행자 전용다리이고 언제나 노점상과 거리의 예술가 그리고 관광객

으로 붐벼서 서정과 낭만이 있는 명소이다.

 

사진에서 보듯이 다리는 언제나 사람들로 북쩍 거린다.    

 

   

 

카렐교의 가장 큰 특징은 조각상이 양측 난간에 15개씩 합계 30개가 설치되어 있다는 것이다. 1683년부터

프라하의 기독교 순교 성자인 네포무크의 조각상을 시작으로 기독교 성인 30인의 조각상을 다리 난간에

세우게 되었다. 17~19세기에 걸쳐서 제작된 이동상들은 성서를 주제로 만들어진 예술 작품으로써 보는

이로 하여금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하지만 조각상에 거미줄이 엉켜 있어 흠이다.

 

다리 양측에는 탑이 세워져 있는데 성쪽으로 두개의 탑중에 조금 작은 것이 로마네스크 양식이고 키 큰

탑은 15세기의 고딕양식으로 지은 것이다.  구시가 쪽에는 하나의 탑이 있고 14세기 유럽고딕양식의

최고봉이라고 한다.

 

 

  

 

위 좌측사진의 동상은 성스테판 동상이다. 성스테판은 순교자인데 이 다리에서 자루에 넣어 강물에 던

저져 순교하였다고 한다. 그 자리를 난간대에 표시 해 놓았다. 성 스테판 동상 오른쪽 3~4m 떨어진 곳에

표식이 있으니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보면 찾을 수 있다.

 

그리고, 그의 동상 아래 동판에 손을 얻고 소원을 빌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소원

을 빌기 위해 줄을 서고 있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다녀 갔는지 동판은 반들반들 윤이 나고 있었다.

 

필자도 손을 얻고 소원을 빌었다. 후일 안사람이 이 사진을 보고 무엇을 빌었냐고 묻길래 아무런 생각없

이 천국에 가게 해달라고 말 했더니, 어이가 없는 표정으로 "그럼~ 빨리가게 해달라고는 안했어?" 라고

하는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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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탑들은 원래 통행료을 징수 하거나 경비를 목적으로 만들어 졌으나 현재는 일반에게 개방되어

사람들이 마음 놓고 모일 수 있는 자유공간이 되었다고 한다. 밤이면 다리 곳곳에서 노래판이 벌어지고

세계 각지의 젊은이들이 모여 그들만의 문화와 우정을 나누는 장소라고 한다.

 

위의 사진은 카렐교 위에서 거리의 악사들이 연주하는 풍경이다.

 

  

 

거리 곳곳에서는 마리오네트 인형을 파는 상점이 많았다. 가지각색의 인형을 들여다 보고 있으면 얼마나

많은 이야기들이 있을까 궁금해 진다.

 

 

좌측은 카렐교에서 블타바강 하류를 향해 바라본 풍경이고 우측은 상류를 향해 바라본 풍경이다. 블타바

강과 저녁 햇살에 홍조를 띈 중세풍의 건물이 잘 어울려져 영화 속에 한 장면 같다.

 

                                             

 

왕궁쪽에서 카렐교를 건너 오면 카렐교 입구에 탑이 하나 있고 이를 돌아서면 카를4세의 동상이 서 있다.

그의 모습은 위엄이 있고 한 시대를 지배했던 용장다운 면모가 서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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