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
금년 하계휴가는 H여행사 패키지 상품으로 "베트남 남북부/왕코르왓"을 선택했다. 나는 주로 패키지
상품을 통해 여행을 한다. 특별한 이유는 없지만 편하고 가이드의 설명이 있으면 여행의 즐거움이 배
가된다. 물론 여러가지 폐해도 있으니 처음부터 꼼꼼히 따져보고 가자.
패키지여행의 또다른 장점은 낯설은 사람들끼리 모여 친구되어 동고동락을 한다는 것이다. 이번 여행
은 우리일행 5명과 건설회사 직원가족 4명, 중고등학교 여교사 2명, 예비부부 2명, 40대 가정주부
2명, 젊은 대학생 2명, 정년에 가까운 공무원 부부 2명, 개인사업자 부부 2명을 포함해 21명이 동행
했다.
이들을 살펴보면 직업, 연령이 다양하고 서울,김포,대전,대구,부산,여수등 사는 곳도 다양하다.
처음에는 서먹서먹 했지만 하루하루 지날수록 오랜 친구같이 친숙해져 갔다.
이번 여행은 하노이공항으로 들어가 하롱베이를 둘러보고 다시 하노이로 돌아와 비행기를 타고 캄보
디아 씨엠릿으로 갔다. 씨엠릿에서 앙코르 유적지를 돌아보고 다시 비행기로 호치민(사이공)시로
넘어 갔다. 본 여행 후기는 베트남과 캄보디아로 구분하여 작성하였고 모두 5편으로 구성했다.
1. 베트남여행기_하롱베이/호치민
2. 앙코르왓 여행기(1/4)_반데스레이/따쁘롬
3. 앙코르왓 여행기(2/4)_앙코르톰/따께우
4. 앙코르왓 여행기(3/4)_앙코르왓/프놈바겡
5. 앙코르왓 여행기(4/4)_톤레삽/캄보디아 아이들/킬링필드
2006년7월25일 베트남항공에 몸을 싣고 오전 10시35분 인천공항을 출발해 베트남 북부 하노이공항
으로 향했다. 몇 일동안 비가 많이 왔으나 출발하는 날은 날씨가 좋았다. 그러나, 항로의 기류가 좋지
않아 4시간30분간의 비행중 여러번 기체가 흔들려 불안하게 했지만 우리 일행은 가벼운 걸음으로 하노
이 공항에 첫발을 디뎠다.
우리 일행은 곧 바로 하롱베이로 들어가 하롱 플라자호텔(Halong Plaza Hotel)에 투숙했다.
하롱 베이 Vinh Ha Long (Ha Long Bay)
여행 첫날, 낯선 이국 땅에서의 첫날 밤은 왠지 설레이는 마음이었는지 새벽 5시부터 눈이 떠졌다. 한
국은 5시면 날이 훤 하지만 이 곳은 캄캄한 밤중이었다. 간단히 눈꼽만 떼고 호텔을 나와 호텔주변을
산책하였다. 호텔은 바닷가에 인접해 있어서 어슴푸레하게 어둠이 걷히는 작은 선착장의 풍경이 정겹
게 들어 왔다.
섬들을 오가는 연객선이 들어와 한 무리의 사람들을 내리고 또 태우고는 어디론가 떠나고 있다. 작은
고기잡이 배는 여명을 가르고 오락가락하고 있었다. 베트남 사람들은 사회주의 국가이면서도 매우
부지런해 보였다.
아침식사를 마치고 우리 일행은 유람선 선착장으로 이동해 배의 이름이 하이퐁(Hai Phong)이라는 유
람선에 올랐다. 4시30분간의 유람선 관광이 시작되었다.
하롱베이는 3,000여개의 섬들이 만들어 내는 아름다움으로 베트남을 대표하는 명소이다. 영화 ‘인도
차이나’에서 주인공이 도피를 했던 장소의 배경이 되기도 했던 곳이다. 난 이번 여행을 준비하면서
동네 비디오방을 전부 뒤져서 영화 '인도차이나'를 감상하고 왔다. 영화 이야기는 다음에 하자.
하롱은 ‘하룡 下龍’의 베트남식 발음으로 용이 내려와 앉았다는 뜻이며, 하늘에서 내려온 용이 입에서
보석과 구슬을 내뿜자 그 것들이 바다로 떨어져 갖가지 모양의 섬이 되었다는 전설이 전해져 온다.
하롱은 독특한 지형으로도 유명한데 오랜 옛날 지각변동이 있을때 지반이 솟아 올라서 이루어진
섬이다. 중국의 계림과 견주어 지는 비경을 간직한 곳으로 1994년에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
되어 보호되고 있다고 한다.
푸른 빛 바다, 갖가지 모양의 절벽과 기암괴석이 즐비한 작은 섬들, 수만년의 세월동안 풍파에 다듬어
진 자연 그대로가 하롱베이의 모습이 아닌가 싶다.
그러나, 일년 중 대부분이 안개에 쌓여 있어 신비한 느낌이지만, 비슷비슷하게 생긴 산들이 너무 많아
몇 시간만 지나면 경이로움은 없어지고 한가한 여유가 생긴다. 바다는 호수처럼 잔잔하여 평화롭기
그지 없다.
사진에 모래사장이 보이는 섬은 티톱(Ti Top)이라는 섬이다. 티톱은 모스크바 사람의 이름을 따서 지
었다고 하며, 모래는 타지역에서 들여와 해수욕장을 만들었다고 한다. 하롱베이 섬에는 모래가 없다고
한다.
하롱 베이 내에만 1,969개의 섬들이 있는데 서쪽에 있는 섬들이 크고 아름다운 편이다. 보트 투어를
통해 하롱의 아름다움을 감상할 수도 있고 식사와 동굴을 탐험하기도 한다. 우리는 석회 동굴을 들려
티톱 섬에 내려서 전망대에 올라 주변 경치를 관람하였다.
하노이에서 하롱베이까지 거리는 80Km정도지만 자동차를 타고 고속도로를 달려서 4시간 걸렸다. 고속
도로에 오토바이가 통행하고 도로포장 상태가 안좋아서 그렇다. 들판에 농사는 대부분 여자들이 나와
서 일을 하는 모습이고, 들판의 논 한가운데에 묘지가 있는 풍경이 이채롭다.
우측 가옥의 사진을 보면 3층 집에 전면 폭(3m)이 좁고, 길이(12m)가 긴 이색적인 주택들을 볼 수 있다.
이런 풍경은 베트남 어디서나 볼수 있는데, 여러가지 이유가 있다고 한다. 과거 프랑스 식민지 시대
에 집 창문의 수 또는 전면의 크기를 보고 세금을 부과하여 세금을 적게 내기 위해 이러한 가옥 구
조가 형성 되었다고 한다. 공산정권이 들어서고 이를 그대로 계승하였고, 개인에게 주어지는 토지가
한정되어 주택과 주택을 다닥다닥 붙여서 건축하는 것이라고 한다.
유람선을 타고 섬과 섬 사이를 누비고 다니는 모습이다. 과일을 가득 실은 배가 유람선을 따라와 관광
객에게 팔고 있다. 베트남은 열대과일이 많이 나지 않아 대부분은 주변 국가에서 수입한다고 한다. 그
래서 과일 값이 비싸고 신선하지도 않다.
하롱 베이의 섬들 중에는 동굴을 가지고 있는 섬들이 여러 개가 있단다. 그 중 가장 웅장한 곳은 항한
(Hang Hanh)으로 길이가 2Km나 된다고 한다. 우리 일행이 들렸던 동굴은 천궁(天宮)동굴이다. 하늘문
용형석, 용좌, 선녀목욕탕 등 가지각색의 형상이 조명에 비추어 환타지에 들어 온 것 같은 환상에 빠지
게 한다.
선상 투어를 마치고 하롱베이를 뒤로하며 하노이로 향했다. 사진은 하롱의 비경들이다.
하노이
천년의 고도 하노이는 역사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구 시가(Old Quarter)와 잔잔한 호수들이 도시
곳곳에 들어서 있는 베트남의 수도이다. 조그마한 골목과 골목들이 마치 미로처럼 연결되어 있는
구 시가는 전통이 그대로 남아 있으며, 프랑스의 영향을 받은 건물들 또한 하노이를 운치 있게 만들
고 있다.
우리 일행은 아침에 일찍 일어나 식사를 마치고 7시30분부터 투어를 시작했다. 처음 찾아 간 곳은
호치민 능묘이다. 이 곳은 반바지, 어깨가 드러나는 옷, 슬리퍼등을 입고 출입할 수 없으며, 카메라
와 전자제품을 휴대하고 입장할 수 없다. 줄을 서서 입장하게 되는데 곳곳에서 경비병이 규정에 맞지
않는 옷 차림을 골라내고 있었다. 대열에서 지적되어 되돌아 나가는 사람들은 황당한 표정이었는데
주로 서양 사람들 이었다. 사전정보가 부족했던 것 같다.
호치민 능묘는 하노이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건물로 베트남 건국의 아버지이자 민족의 영웅인
호치민이 잠들어 있는 곳이다. 호치민은 생전에 그가 죽은 다음 그의 시신을 화장하고 어떤
우상화 작업도 하지 말아 줄 것을 부탁했으나 그의 소망과는 달리 현재 그는 레닌, 마오쩌뚱과
더불어 능묘에 안치되어 졌다.
1969년 호치민이 사망하고 구 소련의 도움을 받아 시신을 방부처리하였으며 베트남 전쟁 말기
에는 미국의 폭격을 피하기 위해 그의 시신을 동굴에 은닉시켜 놓기도 했었다고 한다. 능묘는
1973년부터 75년 사이에 건설되어 75년에 일반에게 공개되었으며 호치민 능묘는 하노이에서
가장 인기 있는 장소로 ‘호 아저씨’를 보기 위한 현지인들의 발길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능묘는 한눈에 시선을 압도하는 깔끔한 사각형의 건물로 청결함마저 감도는데 실내는 호치민
의 시신이 안치되어 정적이 감돌고 있었다.. 호치민은 유리관 안에 편안히 잠들어 있었으며
네명의 병사가 부동자세로 시신을 지키고 있다. 금방이라도 일어 날 것만 같았다.
호치민 능묘에서 뒤로 돌아 나오면 프랑스 식민지 당시의 총독 관저가 나온다. 당시의 건축
양식을 그대로 보여 주고 있으며, 현재까지 잘 보존되어 있다.
좌측에 사진은 호치민 생가이며 검소하게 살았던 생활가구들이 전시되어 있고 뿌리가 하늘로 자라는
신기한 나무도 있다. 토질이 석회질이라 뿌리가 땅을 뚫고 올라와 호수의 습기를 먹고 산다고 한다.
우측 사진은 문묘 중앙사당에 모셔진 공자와 그의 제자들이다.
문묘를 둘러보는 동안 유교적 전통과 한자를 사용하던 그들의 문화를 확인할 수 있었고, 우리의 유교
적인 전통과 닮아 있는 베트남 최초의 국립대학 역할을 하던 곳이라 한다. ‘꾸억뜨쨤'(Quoc Tu Giam)
이라 부르고 우리나라 국자감 같은 곳이란다.
거북이 등에 세워진 비석(82개)에 과거 급제자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고 연도 별로 나열되어 있으며
한자로 표기되어 있다. 사당 중앙에 모셔진 공자의 모습이나 건축적인 양식에서 중국적인 전통이 그대
로 전해져 온 것을 알 수 있다.
위 우측 사진은 호치민 박물관 옆에 있는 자그마한 사원으로 1049년 리타이똥(Ly Thai Tong) 황제에
의해 만들어졌다. 사원은 호안끼엠의 작은 거북이 탑 (Thap Rua)과 더불어 하노이의 상징적인 전설
을 형상화하고 있는데, 리타이똥 황제가 아기를 안고 연꽃에 앉아있는 꽌암 (Quan Am, 관세음보살)
의 모습을 꿈에서 본 후에 시골 아가씨와 결혼해 득남을 하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좌측 사진은 호안끼엠 호수이다. 호수를 따라 가득히 늘어선 가로수들과 호수 안에 만들어진 사원
으로 인해 분위기를 더 하는 곳이다. 야간에는 은은한 조명이 사원과 호수를 비추고 있고 아침에는
타이찌(태극권)을 연습하는 중국계 베트남 사람들의 모습에서 그들의 또 다른 전통을 엿보게 하기도
한다.
호안끼엠은 ‘부흥한 검’이란 뜻으로 15세기에 중국 명나라에 대항해 전쟁에서 승리했던 레타이또
(Le Thai To) 황제가 잃어버린 검을 황금 거북이가 호수 깊은 곳에서 나타나 황제에게 검을 돌려줬
다는 전설이 남겨져 있는 곳이다. 호수 남쪽에 세워진 작은 탑은 거북이를 기념하게 위해 서운 것으
로 거북이 탑(Thap Rua)으로 불린다. 사진의 가운데 하얀 작은 건물이다.
하노이 사람들은 호안끼엠 호수 주변을 산책하거나, 연인끼리 오토바이에 올라 앉아 서로 마주 부둥
켜 않고 데이트를 한다. 하노이는 전력 사정이 안좋아 밤이 되면 시내가 매우 어두어 호수주변에서
사랑을 과시하기에 적당한 장소 같다.
우측 사진과 같은 거리에서 허름한 현지인 맥주집의 초미니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비아허이(생맥주)
를 한잔 마시거나, 베트남 국수의 본고장에서 쌀국수 ‘퍼’를 아침에 그들과 함께 어울려 먹어 보는
것도 추억이 될 것이다. 그러고 싶지만 일정이 허락하지 않아서 ......
위 사진에 보이는 강은 홍강이고 물 색깔은 황톳 빛이다. 다른 사진은 하노이 거리의 풍경이며 재미
있는 것은 오도바이에 살아 있는 황소와 돼지를 싣고 가는 풍경이다. 돼지를 8마리나 싣고 갈 수
있다고 한다.
하노이의 거리는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곳으로 거리는 좁고 복잡하며 오토바이, 시클로는 물론 차량
의 통행까지 허용하고 있어 좁은 골목은 혼잡하고 소음들로 가득하다. 큰 도로에는 차량보다는 오토바
이로 가득차 있다. 그들은 교통 신호 보다는 서로의 묵시적인 신호에 의해 차와 오토바이와 사람이 엉켜
서 통행하지만 물 흐르듯 막힘 없이 통과한다.
혼돈의 무질서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 나름대로 질서를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거리에 익숙
해지면 익숙해질수록 새로운 맛을 음미하게 된다고 한다. 무질서 속에 질서가 있는 거다.
수상인형극은 무아로이누옥(Mua Roi Nuoc)이라고 불리며 그 기원은 10세기 델타의 홍강(Red River)
에서 발생한 독특한 예술이다. 주제는 농부들의 삶과 주변 환경을 예술형태로 만들었다. 이 수상인형
극은 유일하게 베트남에만 있다고 한다. 우리가 방문한 곳은 야외 무대로 꾸며져 있었고 지붕이 있어
비는 맞지 않는다. 이 날 소극은 작물을 수확하는 이야기, 고기 잡는 이야기, 용, 오리, 뱀, 기타 동물
들의 이야기와 축제 등 약 1시간 정도 공연했다.
인형을 조정하는 배우들은 무대 뒤에서 물 밑에 숨겨진 긴대나무와 끈으로 조정하며, 북베트남에 기
원을 둔 전통음악 체오(Cheo) 가수가 배경음악을 노래한다. 우리나라 '창'과 같은 것이다.
호치민 市
7월29일 여행 5일째 되는날 우리 일행은 캄보디아에서 호치민시로 날아와 사이공호텔(Omni Saigon
Hotel)에 Check in 했다. 일행 중 갑자기 환자가 발생해 약간 고생이 되었지만 다음 날 회복이 되었다.
호치민시는 사이공이라고 불리었던 도시로 우리에게 친숙하면서 잘 알려진 도시이다. 월남전이 남겨
준 결과이다. 호치민 시는 베트남의 영혼과 심장이라고 말하며, 가장 큰 도시이고 경제수도이다.
또한, 공업의 중심지이고 새로운 유행을 만드는 곳이기도 하단다.
시내 중심가에 있는 시청사 건물이며 외국의 귀빈을 영접하는 곳이기도 하다. 중앙에 동상은 호치민
이 어린 소녀를 쓰다듬고 있는 모습이다.
호치민시도 역시 거리에 차는 몇대 안보이고 오토바이로 가득 차있다. 휴일이 되면 거리에 오토바이
가 줄어 들지만 젊은이 들은 오히려 더 많이 늘어 난다고 한다.
위 사진은 '전쟁범죄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사진이다. 박물관이라고 하지만 전쟁장비(전투기,탱크
방공포 등등) 수점을 전시하고 사진을 걸어 놓은 것이 전부이다. 그러나, 전쟁의 잔혹함을 전달하기엔
충분 했다.
사진을 유심히 살펴보면, 폭격을 맞아 걸레처럼 너덜너덜해진 시체를 군인이 들고 있는 모습, 종군
기자의 카메라 탄흔, 그리고, 제일 오른쪽 사진은 많이 보았던 사진일 것이다. 이 사진 한장으로
전쟁의 비극을 전세계에 알렸으며 기자는 플리쳐 상을 받았던 것이다. 이 사진의 주인공은 중년이
되어 미국에서 살고 있다고 한다. 그 녀도 역사의 인물로 세계적인 명사가 되었다.
위에 사진들은 고엽제에 대한 피해와 그 증거들을 걸어 놓았다. 고엽제의 휴유증으로 기형아가 된 태아
를 유리병에 넣어 전시하고 있다. 참으로 끔찍한 장면이 아닐 수 없다.
우리는 월남전 영웅담을 들을 때마다 베트콩이 지하 땅굴에서 귀신처럼 나타나고 사라진다는 이야기
를 들었을 것이다. 그 이야기의 진실은 구찌터널에 있었다.
우리는 물소들이 한적하게 노닐고 있는 시골길을 달려 구찌터널에 도착했다. 이 곳에서 흑백 비디오
를 보여 주었는데, 미국에 대한 비난과 미군에 대항에 용감하게 싸운 베트남 전사들에 관한 것이다.
구찌터널은 정글의 숲 속에 위장되어 있었고, 세세한 부분까지 신경을 써 적이 터널을 발견할 수 없
도록 해 놓았다. 일명 숨구멍이라는 통기구를 개미집처럼 만들었고, 취사 때 연기를 안 보이게 하기
위해 3단계의 정화 과정을 거치도록 하였으며, 터널의 입구는 강의 수면 아래에 만들었다고 하니 얼
마나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는지 알 수 있다.
터널은 어른 한명이 기어서 겨우 지나갈 정도로 비좁으며, 여러 통로로 이어지게 설계되어 있다. 터
널 안에는 후덥지근한 열기가 있고 가슴이 답답하여 폐쇄 공포증이 있는 사람은 들어가서는 안될
것 같다. 터널 중간에 학습장과 휴식처도 있다.
이 터널 주변에는 관광객을 위한 부비트랩을 설치하여 전시하고 있으며, 전사들이 영양 보충을 위해
먹었다는 "얌"이란 음식을 만드는 부엌을 볼 수 있으며 먹어도 된다. 무슨 맛인지 알 수 없었지만 고
구마 맛이라 한다.
위 사진은 베트남 전사가 적군에게 쫒겨 정글에서 위장된 구찌터널로 숨어 들어가는 장면을 재현
한 것이다. 구찌터널은 외국인 관광객에게 필수가 된 관광코스이며 숲속에 터널입구와 섬뜩한 부
비트랩이 전쟁의 처절함을 느끼게 한다.
엄청난 화력과 전쟁물자를 쏟아 부은 미국을 상대로 전쟁에서 이길 수 있었던 베트남 인들의 하나
된 의지와 끈기를 알 수 있는 관광지 인것 같다.
좌측 사진의 강넘어로 보이는 밀집된 빨간지붕 주택들은 부자들의 집이라고 한다. 베트남의 강남이라
고 생각하면 된다.
가운데 사진은 씨클로를 타고 사이공 번화가 야경을 관람하는 모습이고, 오른쪽 여자들의 사진은 따이
한 들이다. 우리가 들린 상점은 월남집이다. 월남집은 한식당이다. 베트남의 뜻이 있는 교민들이 모여
따이한 후원회를 만들어 이 들을 돕고 있었다. 교민들과 주재원을 상대로 사업을 하고 있었고 관광객
들에게도 물건을 팔아 전액 따이한을 돕는다고 한다. 따이한은 베트남 말로 한국인 혼혈이라는 뜻이다.
후원회 회장 이야기에 의하면, 전쟁 당시 한국군은 사이공의 여자들을 사랑했으며 그 결과로 따이한
이 생겼다. . 그러나, 그들은 버려 졌으며 갖은 멸시와 박대로 베트남에서도 가장 비참한 생활을 한다
고 한다. 한류 열풍이 불고 있는 베트남에서 한국의 이미지는 매우 좋고 한국인도 좋아한다고 한다.
그러나, 따이한은 한국인의 피를 받았으면서도 한국을 가장 증오하는 상대라고 한다. 이해가 가는 대
목이다. 이제라도 그들을 도와야 하지 않겠나!!!
좌측 첫번째 사진은 노틀담 성당이다. 프랑스 파리에 있는 노틀담 성당을 Copy 해서 건축했다고 하여
노틀담 성당이라고 한다. 이 성당은 1877년에서 1883년 사이에 세워진 신로마네스크 양식의 건축물이
며 프랑스 식민통치의 상징이고 사이공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물로 평가된다고 한다.
두번째 사진은 노틀담 성당 옆에 서 있는 중앙우체국이다. 이 건물도 프랑스 통치시대인 1886부터
1891년에 건축된 우체국이다.
이번 여행의 마지막 밤은 사이공 강(Saigon River)에서 유람선을 타고 선상 식사를 했다. 베트남의
가수들이 나와 노래을 했고 "돌아와요 부산항에, 소양강 처녀" 등등 한국노래를 했다. 지나가는 유람
선이 물고기 모양으로 우리에게 잘 가라고 인사하는 듯 했다.
사이공이여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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