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엠릿에 도착하다]
하노이를 출발해서 1시간 50분만에 씨엠릿 공항에 도착했다. 공항은 최근 새청사를 마련하여 개장
한지 1개월여가 지났다고 한다. 붉은 지붕에 전통양식으로 지어진 공항청사가 현대식 건물에 익숙
한 우리에게 신선하게 보여졌고, 풍경이 아름다워 비행기에서 내린 방문객들이 청사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느라 여념이 없었다.
공항에서 캄보디아 입국비자를 받느라 대기홀에서 수백명이 북새통을 이루고 있는데, 우리 일행은
20여분 기다리니 인솔자가 수속을 마치고 와서는 일반인 창구가 아닌 한쪽 구석에 조그만 쪽문을
통해 나가라는 것이다. 공항근무자도 친절하게 도와주어 어렵지 않게 입국하게 되었다. 나중에 현지
가이드에게 들은 이야기이지만 입국비자를 받아서 신고를 마치고 입국하는데 보통 1~3시간 걸린
다고 한다. 우리 일행은 급행료를 지불했기 때문에 공식절차(?)를 생략하고 바로 나올수 있었다는
것이다.
공항을 빠져나온 우리 일행은 호텔에 여장을 풀고 저녁식사를 위해 식당으로 이동했다. 식당은 톤레
샵(Tonle Sap) 레스토랑이라는 부페 식당이었고 수백명을 동시에 수용할 수 있는 규모였다. 자리는
빈자리가 없이 만원이었고 손님의 전부가 한국 관광객이었다. 음식은 야채와 국수를 끓는 물에 즉석
에서 데쳐 먹는 쌀국수와 캄보디아식 음식으로 종류가 많았고, 대부분 향이 들어있어 음식은 맛을
보고 먹어야 한다. 맛은 우리 입맛에 적절히 맞추어져 있었고 김치도 있어 식사는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식당은 무대가 설치되어 공연을 할 수 있도록 되어 있었고 그 날은 민속춤인 "압살라"을 공연했다.
[씨엠릿공항 전경] [호텔로비 민속악기 연주] [압살라 민속춤 공연]
[역사 유적지를 돌아보다]
아침 5시30분에 눈을 떴다. 사라진 역사의 도시에서 하룻 밤은 설레이는 마음이었는지 Morning call
이전에 눈이 떠 졌다. 간단히 샤워를 하고 아침식사를 마쳤다. 호텔 부페식당은 매우 깔끔하고 종업원
들은 눈만 마주치면 인사를 했다. 베트남은 사회주의 국가여서 그런지 별로 친절한 것을 느낄수 없었
지만 이 곳 사람들은 순박하면서 친절했다.
■ 반데스레이(Banteay Srei) 사원
처음 찾아간 곳은 Banteay Srei 사원이다. 반데스레이 사원은 10세기 후반(967)에 건축된 것으로 알려
졌고 사암(Sand stone)으로 축조되었다. 이 곳의 모든 건축물은 사암과 황토를 재료로 사용하였다.
반데스레이는 "여인들의 성채"라고 불리우며 작고 아담하다.
해저드 안에 노랑, 분홍연꽃이 붉은 사원과 어루러저 1000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도 자태를 지니고
있는 것을 보면 당대에는 정말로 아름다운 사원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벽화은 매우 정교하게 조각되어 있으며 종교적인 신화의 내용을 그대로 담고 있다.
원래 힌두교는 세 신이 번갈아 가면서 세상을 관리했다고 한다. 바로 파괴의 신 "시바", 창조의
신인 "브라흐마(=브라마)", 유지와 재생의 신인 "비슈누"이다. 사실, 힌두교에서는 신을 인간화
했기때문에 신들도 결혼하고 자식도 있으며 죽기도한다. 그래서, 신이 무지무지 많다.
그 많은 신들의 이야기가 사원에 암각되어 있는 것이다.
씨엠릿은 신들의 이야기가 무궁무진하다. 과연 "전설따라 삼천리"였다.
[ 사원 건축물 벽화의 이모저모 ]
■ "라바나" 신의 이야기
사원은 아래 그림과 같은 양각들이 많이 조각되어 있다. 이것은 신화의 한부분이며 그 배경을 하나
만 설명해 보자.
벽화 제일 아래 중앙을 살펴보면 머리가 여러개이고 팔이 많은 "라바나"라는 신이 있다.
이 '라바나'는 원래 수행을 하는 신이었는데, '브라흐마(Brahma)'의 총애를 얻기 위해 만년간
수행을 했다고 한다.
이 '라바나'는 머리가 본래 10개인데, 천년마다 자신의 머리를 하나씩 잘라서 '브라흐마'에게 바쳤
다고 한다. 그런데, 마지막 하나의 머리가 남았고 그것 마저 자르려 할때 '브라흐마'가 나타나서
물어 보았다.
"넌 왜 계속 머리를 자르니?"
"브라흐마를 위해 수행하는 겁니다."
이 말을 들은 '브라흐마'가 감동을 해서 '라바나'에게 상을 주는데, 실수를 하고 말았다. 신들도 죽일
수 없는 영생의 힘을 주었던 것이다. 영원히 죽지 않게 된 것을 안 '라바나'는 안하무인으로 성격이
바뀌어 갔다.
처음엔 자신도 믿기지 않았는데 다른 신들과 몇번 싸우다보니 자신이 정말로 안죽는 걸 알게
되었다. 머리를 잘라도 계속 솟아나고 팔을 잘라도 계속 솟아나는 거였다.
어느날,
'라바나'는 '시바'와 아내 '파르바티'가 살고있는 "카일라사"라는 산에 들어가려고 했다.
그 산이 위 그림의 배경이다. 그런데 산에 들어가려고 하니까 원숭이 모양의 수문장들이
가로 막았다.
'라바나'가 화를 내면서 거만하게 "비키라!" 그랬는데 그 수문장들은 "넌 원숭이한테 코피
터질거야!!"라고 화를 내고 놀리면서 들여보내 주지 않았다.
이에 '라바나'는 마구 화를내면서 그 많은 손으로 산을 흔들어 명상에 들어간 '시바'를 깨우려
했다. 위 벽화을 다시 잘 살펴보면 위 쪽에 '시바'신이 쉬고 있는데 '라바나'가 산을 마구
흔들고 있는 모습이 보일 것이다. 바로 이장면을 묘사한 것이다....
산에 있는 것들은 모두 동물들인데, 산을 흔들고 있으니 이 동물들이 괴로워서 '시바'의 부인
인 '파르바티'에게 부탁했다. '시바'를 깨워서 어떻게 해결해 달라는 것이다. 그래서 '시바'의
부인인 '파르바티'가 명상에 들어간 '시바'의 어깨에 착 달라 붙어서 깨운다. 바로 그 장면이
벽화의 위쪽 '시바'의 어깨부분 그림이다.
화가난 '시바'가 발가락으로 산을 꾹~ 눌러 버렸다. 그래서, '라바나'는 산에 갇혀버렸다고
한다. '라바나'는 이제야 잘 못을 뉘우치고 '시바'를 칭송하는 노래를 천년동안 불렀다고
한다. 손오공이 산에 갇혀 있는 모습과 흡사하지 않는가?
'시바'신은 어느새 화가 누그러져 '라바나'를 풀어 주면서 다시는 신들을 괴롭히지 말라고
했다. '라바나'는 "옜썰~~"하고는 신나서 가버렸는데, 죽지도 않는 자신의 몸을 믿고
지나가는 신들을 또 괴롭혔다고 한다.
<< '라바나'이야기는 현지 가이드의 이야기에 근거 하였음>>
■ 따쁘롬(Ta Prhom) 사원
이 시원은 12세기 중반에서13세기 초에 건축된 것으로 알려져 있고 아버지를 위해 쁘리아 칸을 지은
"자야바르만" 7세가 어머니를 기리기 위해 세운 사원이다.
이 사원은 서쪽으로 들어가 동쪽으로 나간다. 이름은 '브라흐마의 조상'이라는 뜻이다.
따 프롬은 앙코르 유적지 중에서 제법 큰 사원에 속한다. 남아 있는 기록이 이 사원의 규모를 잘 설명해
주고 있는데, 260개의 신상과 39개의 첨탑들 그리고 566개의 집단 주거 시설이 있었다. 따 프롬은 연속
된 긴 낮은 건물들이 한 층에 있었으며, 보통 사각형의 라테라이트 벽으로 둘러싸여 있다.
그 규모는 600*1,000m이었으며 지금은 담벽의 흔적만 남아 있다. 사원의 중심은 통로로 연결되는 연속
된 탑들을 통해서만 접근할 수 있다. 이러한 배치는 사원의 심장부로 가는 길을 성스럽고 엄숙한 길로
표현하는 전형적인 방법이다.
열대 무화과나무, 보리수나무등의 뿌리가 사원을 덮고 있었으며 나무가 쓰러지면서 건물도 함께
무너져 내린 모습들을 생생하게 볼 수 있다.
사원의 웅장함과 천년의 숨결은 무너진 돌틈사이에서 신음하고 있는 듯 하였고, 자연과 어우러진
무너진 폐허에서 권력과 영화의 무상함을 느낄 수 있었다. 다른 사원들은 배치가 대칭이므로
한쪽만 보면 다른 쪽은 무엇이 있는지 대충 알 수 있고, 이 사원은 사원 전체가 보리수나무나
탄야 나무와 절묘하게 어우러져 있어서 구석구석을 보아야 그런 폐허의 장관들을 목격할 수 있다.
위 사진은 영화 툼레이더의 배경이 되었던 장소이며, 인디아나존스도 여기서 촬영을 했다고 한다.
이 사원은 시간적인 여유를 가지고 통로를 따라 천천히 다니면서 천년 전에 수행하는 모습을
상상하면 엄숙한 분위기가 절로 든다. 이 사원은 건축물의 배치보다는 문 하나만 지나면 또
다른 세상이 나타나면서 오묘한 신비를 느끼게 한다.
따 프롬은 통행로만 만들어 놓은 것을 빼고는 전혀 복구를 하지 않은 사원이다. 자연이 어떻게
사원을 무너지게 했는지 그 과정과 결과들을 그대로 보여주기 위하여 일부러 복원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방문객들은 사원을 처음 탐험한 사람들의 감흥을 느낄 수 있는 여지도 많이 있다.
이 사원을 소개하는 책자나 안내서들에는 이곳을 인디아나 존스에 나오는 어떤 곳으로 비유하기
도 한다. 정말로 열대 무화과나무들과 가지로부터 뿌리가 내려와 땅에 박힌 보리수나무 등이
어떻게 사원을 덮을 수 있었고, 이 나무들이 무너지면 사원이 어떻게 될 것인지에 대하여 생생하게
볼 수 있다. 자연의 생명력 앞에 무력해지는 인간을 절실히 느낄 수 있는 곳이다.
돌에 새겨진 범어의 기록이 아직도 선명해 이 사원의 역사를 말해준다. 따 쁘롬에는 당시
3,140개의 마을을 통치하였고 79,365명이 이 사원을 관리하였는데, 18명의 고승과 2,740명의
관리들과 2,202명의 인부들과 615명의 무희들이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사원에 남아 있는 재산 중에는 500Kg이 넘는 황금 접시 한 쌍과 35개의 다이아몬드, 40,620개의
진주, 4,540개의 보석, 876개의 중국에서 온 커튼, 512개의 비단 침대 그리고 523개의 양산이
있다고 한다. 이러한 숫자가 비록 왕의 지위를 높이기 위해 과장된 것으로 생각되지만, 따 쁘롬
사원의 중요성과 의미를 잘 말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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