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미여행 6일차_마추픽추 투어
마츄픽츄를 가기위해 쿠스코에서 버스로 이동하여 우루밤바에 도착했다. 여기서 하루를 묶고 다음 날 오얀따이탐보 기차역까지 가서 페루레일 기차를 타고 아구아 칼리엔떼스까지 이동했다. 아구아 칼리엔떼스에서 다시 셔틀버스를 타고 마추픽추 정상 입구에 도착했다. 출입구를 지나 급경사지를 10여분 오르니 마추픽추가 한눈에 들어 왔다. "와~" 하는 탄성과 함께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다. 인간의 힘이 이렇게 위대한 작품을 만들어 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에는 불가사의한 일들이 많다. 불가사의한 일이란 사람의 손으로 이루어 낸 가장 기적적인 건축물을 말한다. 시대와 문명권에 따라 세계 7대불가사의는 그 정의가 다르지만 '신세계7대불가사의'에 마추픽추가 들어 간다. 어떻게 정의를 하더라도 마츄픽츄는 인간의 손으로 만들어 낸 경이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해발 2,430m나 되는 산의 깍아지른 듯한 능선에 공중도시를 건설한 것은 기술이 없던 고대에 인간이 이루어 내기에는 불가능 해 보였기 때문이다.
마추픽추는 왜 만들어 졌는지 의견이 분분하지만 1450년경 잉카제국의 파차쿠티 황제가 도시를 건립하고 고대 요새도시로 사용한 것으로 추정한다. 건축은 돌과 석재들을 쌓아 올려 만들어 졌고 해시계, 태양의 신전, 세 창문의 방등이 있다. 고고학자 들은 파차쿠티 황제가 군사원정을 끝낸 후 황제의 휴양궁전으로 사용하기 위해 만들어 졌다는 설에 무게를 두고 있다. 이 도시가 80여년간 사용된 후 버려진 것은 미스테리하지만 이 후 스페인 정복자들에게 발견되지 않고 있다가 1911년 미국의 탐험가 하이럼 빙험에 의해 발견되어 훼손되지 않은채 보존될 수 있었다.
마추픽추 인구는 약750여명으로 추정하는데 황제의 시중을 들기 위해 대기하던 사람과 종교적, 군사적으로 필요한 사람들이 거주하며 신들에게 제사를 지내기도 하였다. 농업은 계단식 농업이었다. 3,000개가 넘는 계단들로 밭을 만들고 식량을 안정적으로 공급했지만 750여명의 식량으로는 부족하여 계곡 아래에서 식량을 조달한 것으로 보인다.
마추픽추를 이해하려면 우선 페루의 역사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고고학자들은 약 5,000년 전 페루의 고대문명이 시작되었다고 본다. 페루에는 아메리카 대륙에서 가장 오래된 카랄 Caral 문명이 있었고 이후 기원전 3000년에서 1800년경 사이에 노르테 치코 문명이 번성하였으며, 뒤 이어 쿠피스니케, 차빈, 파라카스, 모차카, 나스카, 와리, 치무 문화가 있었다고 고고학자들은 말한다.
잉카제국은 15세기경 가장 강력한 세력으로 100여년간 광대한 제국을 건설하였다. 지금의 페루를 비롯하여 콜롬비아, 에콰도르, 볼리비아, 칠레 일부에 여러 부족을 흡수하였다. 잉카는 태양신을 숭배 하였기 때문에 태양의 아들이라는 뜻의 잉카(Inca)라고 불렀다. 잉카 제국은 쿠스코에 수도를 두고 명실공히 남아메리카 대륙 최대 문명국으로 군림했다. 인구는 천만명 이었고, 마추픽추와 쿠스코 주변에 건축물과 거대도시를 건설한 잉카제국은 석조기술이 매우 뛰어났다.
1532년 프란시스코 피사로가 이끄는 스페인 정복자들이 잉카황제 아타우알파를 제압하고 제국을 정복하여 잉카제국은 종말을 맞게 된다. 철기를 쓰지 않았던 잉카제국이 신식무기로 무장한 스페인 군대를 막을 수 없었다. 정복자들은 쿠스코 태양의 신전 코리칸차와 잉카제국의 건축물들을 부수고 페루 곳곳에 스페인식 도시를 건설했다. 이 와중에 마추픽추가 발견되지 못하여 훼손되지 않은 채 보존되어 왔던 것이다. 참으로 다행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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