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일찍 서둘러 길을 나섰다. 늦가을답지 않게 날씨가 따뜻하더니 오늘은 쌀쌀한 기운이 몸을 움추리
게 한다. 그래서, 겨울 등산복을 꺼내어 입고는 집을 나섰다. 서울을 빠져나와 46번 경춘국도로 들어서니
부채살 햇볕이 차창에 부서지며 막바지 가을 풍경이 우리를 맞아 주었다...
파스텔톤 가을색으로 채색된 경춘가도를 굽이굽이 달려가니 서정적 감성이 넘치는 느낌이다. 가로수는
이미 낙엽이 되어 쌓여 가고 갈색능선은 앙상한 가지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도로 옆에 그림같은 카페
들은 햇살에 수줍은 듯 홍조를 띄우고, 말라가는 강물은 바닥을 드러내며 목말라 한다.
경춘가도의 가을정취에 흠뻑빠져 넋을 잃고 달려 왔더니 어느새 저멀리 강촌역이 보였다. 산비탈에
아슬아슬하게 들어선 강촌역은 이름만 들어도 낭만이 흐른다. 젊은 날에 누구나 한번쯤 이 역에서
연인과 함께 열차를 기다린 추억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강촌역은 낭만과 사랑이 넘치는 젊음의 정거
장이다..
강촌은 산행을 마치고 다시 들리기로 하고 삼악산으로 향했다. 삼악산은 북한강, 의암호, 소양강을 끼고
있어 정상에서 바라보는 경치가 절경이며, 용화봉(645m), 청운봉(546m), 등선봉(632m)을 합쳐서 삼악이
라고 한다.
산세은 험하지 않아 아기자기한 산행을 즐길 수 있다. 그렇다고 산을 쉽게보면 안된다. 정상에 능선은
바위로 되어 있어 위험한 곳이 많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등선폭포 입구에서 산행을 시작했다. 주차요금은 2,000원이고 입장료는 1,600원
이다. 등선폭포 입구에 들어서면 좁은 계곡 양편으로 상점과 음식점이 들어서 있다. 여기서, 김밥 한줄
사서 넣고는 계곡안으로 들어 섰다.
매표소를 막지나면 삼악산 최고 절경인 계곡이 한눈에 들어온다.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려 앉을 것 같은
기암절벽의 바위가 양편으로 우뚝 솟아 있고, 그 사이로 눈이 시리도록 푸른 하늘이 보인다. 쥐어 짜면
푸른 물이 뚝뚝 떨어져 바위에 푸른 물이 들것만 같다. 계곡은 마치 동굴을 들어서는 듯한 깊은 협곡을
이루고 있다.
오른쪽 사진은 등산안내도이다. 계곡 중간에 세워져 있는 단풍잎 모양의 안내도가 이색적이다. 사진을
클릭하면 확대화면으로 볼 수 있다.
삼악산은 매니아들이 즐겨 찾는 등산코스가 있다. 강촌역 조금 지나서 능선을 따라 종주하는 코스다.
6시간 정도 소요된다고 한다. 일반인은 보통 의암댐 상원사 방향에서 등선폭포로 넘어오는 코스를 이
용한다. 또는 반대로 등선폭포에서 상원사로 넘어 가는 코스가 있다.
◇ 의암댐-상원사-깔닥고개-정상-흥국사-등선폭포 (6Km,3시간)
◇ 등선폭포-흥국사-정상-정양사-의암댐
우리 일행은 등선폭포에서 출발하여 상원사, 의암댐으로 넘어가는 코스를 잡고 계곡을 오르기 시작했다.
그러나, 우리 일행은 중간에 길을 잘 못들어 상원사로 가지 못했다. 뒤에 자세히 설명한다.
삼악산에는 크고 작은 폭포가 5개나 있다고 한다. 폭포의 이름을 전부 알 수 없으나 삼악산의 볼거리를
제공해 준다. 위 사진은 그 유명한 등선폭포이다. 등선폭포는 제1,2,3폭포가 있으며 높이는 4.5m정도
이다. 위의 등선폭포 사진은 똑똑이(디카)로 찍은 것이다. 사진을 클릭하면 큰 사진으로 볼 수 있다.
약 25년 前, 이 곳에서 동호회 친구와 흑백사진을 촬영하던 기억이 난다. 그 때나 지금이나 폭포는 변함
이 없으나 그 친구는 어디서 무엇을 하며 사는지 궁금하다...
그 친구와 등선폭포에 얽힌 에피소드가 하나 있다. 학창시절 흑백사진전에 출품할 작품사진을 찍기 위
해서 우리는 여기까지 찾아 왔었다. 학창시절 사진을 배우던 때이라 작품사진이라고 하기엔 부끄러운
표현이고 그냥 습작 정도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우리는 여기서 수십장의 등선폭포 사진을 찍었다. 당시 24장짜리 흑백필름 한통을 거의 다 소비했다.
그리고, 학교로 돌아와 암실에서 인화를 하기 위해 필름을 펼쳐 놓은 상태로 저녁식사를 하고 돌아오니,
필름이 뒤죽박죽 섞여 있었다. 나중에 원판 필름을 찾기 쉽게 하고, 심사용 소사진 뒤에 붙이기 위해 필
름을 한컷 한컷 잘라서 구별해 놓았는데 후배가 암실 정리한다고 한 상자에 몰아 넣어버린 것이다.
그래서, 친구의 필름과 내 필름을 도저히 구별할 수가 없었다. 동일한 피사체를 같은 시간, 같은 위치에
서 찍었기 때문이다. 같은 장면을 수십장 찍을 때는 노출정도를 기억하기 위해 최적 노출을 중심으로 한
단계씩 변화를 주면서 찍는다. 그런데 친구도 같은 방법으로 촬영했기 때문에 필름의 내용만 보고는 누
구의 필름인지 알 수 가 없었다.
후에 여기서 촬영한 등선폭포 사진이 전시되기로 결정되었다. 조리개를 작게하고 노출을 길게하면 위
등선폭포 사진과 같이 떨어지는 물이 실선처럼 연결되는 효과가 있다. 그것이 채택된 것이다.
하지만, 누가 촬영한 사진인지 구별할 수 가 없어 누구의 이름으로 전시 할 것인지가 논란이 되었다.
그 때 친구는 주저없이 내게 양보했다. 욕심이 없고 큰 포용력을 가지고 있던 친구이다. 몇년 후 그 친구
는 캐나다로 이민을 가서 연락이 끊어 졌다. 오늘은 그 친구가 보고 싶어 가슴이 아련해 진다.
[디카 자동노출로 촬영] [디카 AS모드 셔터우선 1/8로 촬영]
위 사진은 선녀탕 폭포를 노출만 변경하여 촬영한 것을 비교한 것이다. 디카로 촬영을 해도 위와 같은
사진효과를 만들어 낼수가 있다. 디카의 성능을 고려하여 최대한 노출을 길게 잡으면 오른쪽 사진처럼
다른 분위기의 효과가 연출된다.
등선폭포를 막 올라서면 선녀탕이 나온다. 물이 맑아 바닥이 보이고 작은 폭포가 운치를 더해 준다.
선녀탕을 지나면 이름을 알 수 없는 폭포가 나온다. 아마도 제3폭포인 것 같다. 시원한 물줄기가 산행의
발걸음을 가볍게 한다.
계곡은 가을 햇살을 못 이기듯 그 빛깔이 퇴색되어 가고 숲은 옷을 벗기 시작한다. 산행하는 연인들은
아랑곳 없이 산을 오르고 작은 폭포는 졸졸졸 노래를 한다.
계곡을 거의 벗어날 즈음 흥국사를 가르키는 이정표가 나오고 누군가의 정성이 담겨있는 작은 돌탑이 서
있다. "후" 하고 불어 버리면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것만 같다.
산 중턱쯤 오르자 나무는 앙상한 가지만 드러내고 숲은 낙엽으로 수북이 쌓여 있다. 가을의 스잔한 분
위기를 즐기는 여인네들이 두런두런 담소를 나누며 길을 가고 있다.
흥국사의 경 읽는 소리가 산중에 들려 올 즈음, 허술한 막사가 보였다. 안을 들여다 보니 길손 몇몇이
막걸리에 목을 축이고 있었다. 파전과 도토리묵을 팔고 있다. 큰 고목을 잘라서 만든 의자와 식탁이 정
겹게 다가온다.
허술한 산채를 돌아서 올라서니 흥국사로 들어서는 길목에 은행나뭇 잎이 노랗게 떨어져 있고 마지막
단풍은 잎새에 이는 가을바람에 몸을 부르르 떨고 있다. 여기저기 가을이 가고 있음을 못내 아쉬워하는
풍경들이 즐비하다...
흥국사는 비운의 왕, 궁예와 인연이 있다고 한다. 서기 894년경 후삼국시대 고구려 궁예가 왕건을 맞아
싸웠던 곳으로도 전한다. 궁예는 와데기라는 곳에서 기와를 구워 궁궐을 짓고 흥국사라는 절을 세워
나라의 재건을 염원했다고 한다.
지금도 당시 궁궐이 있던 곳을 "대궐터"라고 부르며
기와를 구웠던 곳을 "왜(와)데기"
말을 매어 두었던 곳을 "말골"
칼싸움을 했던 곳을 "칼봉"
군사들이 옷을 널었던 곳을 "옷바위"라고 부른다.
사찰이라기 보다는 암자와 같은 작은 절이다.
흥국사 앞뜰에 세워져 있는 통일기원비를 지나서 정상으로 향하면 철계단이 나온다.
철계단을 올라서 조금더 오르면 작은초원이라는 이정표가 나온다. 커다란 나무아래 평평한 돌들을 모
아 놓아서 잠시 쉬어가면 좋다. 우리 일행도 여기서 잠시 쉬며 생수로 목을 축였다.
작은 초원을 돌아서면 가파른 돌계단이 나오는데 이 계단이 333계단이다. 실제로 333개의 계단이 되
는지는 세어 보지 않아서 알 수가 없다. 계단 옆에는 엉성하게 쌓아진 돌탑 밭이 있다. 대략 짐작으로
100여개는 되어 보인다. 누가 어떤 정성을 가지고 이 돌탑들을 쌓았을까? 참으로 궁금해 진다.
333계단을 지나면 경사가 급한 산허리를 가로질러 가게된다. 자칫 미끄러지면 저 아래까지 한번에
밀려 갈 것 같다. 위 우측사진은 옆으로 누워 자란 소나무이다. 신기하여 한장 담아 왔다..
여기서 조금더 올라서니 큰초원이라는 이정표가 나왔다. 정상이 가까와 왔음을 알려주는 이정표가 너
무 반갑다. 여기는 곧고 쭉쭉 뻗은 소나무 숲이 있다. 봄에는 송진 향이 가득할 것 같다.
한무리의 산악회 회원들이 걸음을 재촉하여 하산하고, 울창한 갈참나무 숲 사이로 부서지는 가을 햇살
을 만끽하며 다정한 연인이 산을 내려 가고 있다. 삼악산은 갈참나무 숲으로 온 산이 뒤덮여 있다. 쭉쭉
뻗은 갈참나무 숲과 낙엽은 늦 가을의 서정적 정취에 푹 빠지게 한다. 참으로 아름다운 풍경이다.
갈참나무는 나무줄기가 소 궁둥이에 붙은 소똥처럼 쩍쩍 갈라져 있어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정말 징
그러울 정도로 쩍쩍 갈라져 있다. 열매는 도토리로써 묵을 만들어 먹는다.
정상 아래에는 죽은 괴목이 을씨년스럽게 서있고 산성이라는 푯말이 가르키는 방향으로 용화봉 정상이
보인다.
삼악산에는 산성이 있었다고 한다. 내성과 외성이 있었으며 내성 중심에는 대궐터가 있었고 대략 후삼
국시대를 전후해서 축조 되었다고 한다. 이 산성은 삼한시대 맥국의 성터라는 전설이 있으며, 궁예가
철원에서 왕건에게 패퇴하여 피신하였던 장소라고도 전해져 온다고 안내 간판에 적혀 있다.
지금은 그 흔적도 보이지 않는다. 유구한 세월이 무상할 뿐이다.
용화봉 정상에 오르자 호반의 도시 춘천이 한눈에 들어 왔다. 의암호수의 잔잔한 물줄기와 이름모를
섬들, 그 옆으로 길게 들어 선 춘천이 손바닥처럼 보인다. 가슴이 탁 트이는 기분이다.
남쪽으로는 파도처럼 굽이치는 능선이 장관이다.
정상에서 상원사 쪽으로 내려섰다. 이정표에 매표소 1.48Km라고 친절하게 씌여 있어 그 방향으로 한참
을 내려 왔다. 산 능선은 바위들이여서 조심조심 내려왔다. 얼마나 내려 왔는지 갑자기 의암댐이 눈에
들어 왔다. 그래서, 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어 지나가는 사람에게 물어 보았다.
『상원사까지 아직 멀었나요?』
그러자 그 사람은 『길을 잘 못 들었어요. 경치가 하나도 없잖아요?』라고 퉁명스럽게 대꾸 했다. 그
사람도 일행 중 선두가 길을 잘 못 잡아 이리로 내려오는 길이라며 투털투털 거렸다. 그리고, 한마디
더 했다. 입장요금까지 받으며 이정표 하나 제대로 설치하지 못해 헷갈리게 한다며 관리소를 원망 했
다.
천천히 생각해 보아도 어디서 길을 놓쳤는지 알 수가 없었다. 분명히 마지막 이정표를 확인하고 그 길
로 계속 내려 왔는데 .......?????
이정표가 요소요소에 있어서 친절하다고 칭찬까지 하고 왔다. 하지만, 결정적인 갈림길에서 이정표가
없었던 것이다. 상원사쪽 풍경을 보지 못해 서운하기도 하고 지혜롭지 못한 이정표 관리에 씁쓸하기도
했다. 다시 되돌아 갈 수는 없어서 그 길로 그냥 내려 왔다. 상원사 산사의 가을 풍경과 산중 카페를
들리지 못해 아쉬움이 남는 산행이 되었다. 오늘 산행은 4시간 소요되었다...
그 길로 산비탈을 계속 내려오니 정양사라는 절이 나왔다. 입구에 커다란 불상이 배를 불뚝 내 놓고
인자한 웃음을 짓고 있다. 길을 잘 못 와서 마음이 씁쓸 했던지 이 불상을 보고 허탈한 웃음이 나왔다.
참으로 행불은 마음에 있는 것 같다.
정양사 입구에서 시내버스를 타고 등선폭포 입구까지 와서는 승용차를 타고 강촌다리를 건넜다.
젊음을 실어 나르는 경춘선 철로를 만나니 젊은 날의 추억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고 씁쓸했던 마음이
눈 녹듯 녹아 내렸다.
잔잔히 흐르는 강물에 땅거미가 내리고 하루 해는 서둘러 저물어 가고 있다.
강촌역의 풍경이다. 오랜 세월을 대변하듯 낡고 초라해 보였지만 그럴수록 많은 젊은이들의 추억이
덕지덕지 묻어 있어서 그러리라.
강촌은 서정적인 이름만큼이나 아름다운 경치와 함께 젊음을 발산할 수 있는 공간으로 사랑 받아 왔다.
강물을 굽어보는 벼랑 중턱에 매달린 강촌역과 물가를 따라서 걷는 산책로, 해가 지고 강가에 어둠이
내리면 곳곳에서 피어 오르는 모닥불, 통기타를 치는 젊음이 가득한 곳이었다.
한때 사랑에 빠졌던 젊은이들은 이곳에 한토막씩 사랑의 추억을 묻어 두었던 기억들이 있을 것이다.
자전거를 타고 구곡폭포를 가거나 산책로를 돌아 보기도 했다. 지금은 스쿠터, 산악오토바이를 타고
돌아본다. 세월이 변화했음을 말해 주고 있는 것이다.
강촌역 앞에서 참이슬 홍보행사가 한창이다. 둥근 원판에 화살을 던져 참이슬의 "이"자를 맞추면 양주
를 한병 준다고 한다. 그래서, 필자도 도전해 보았으나 실패했다. 샘플용 소주 하나만 받아 왔다.
강촌의 먹자골목 풍경이다. 거리는 온통 젊은이 들로 넘쳐나고 있었다.
조명이 환하게 밝혀진 식당을 찾아 들어가서 춘천 닭갈비와 막국수를 주문했다. 식당 중앙에 아유미의
싸인이 걸려 있어 한 컷 담아 왔다. 밑에 싸인은 희선이라고 쓰여 있다. 아마도 "김희선"인것 같다.
불판에 올려진 춘천 닭갈비이다. 김이 모락모락나고 지글지글 익어가는 닭갈비가 맛 깔스러워 보인다.
쭈~욱 소주 한잔에 산행의 피로가 확 풀렸다. 고기는 부드럽고 너무 맛 있었다. 글을 쓰는 지금도 군침
이 돈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강가 쪽으로 내려오니 한편의 노래 가사가 커다란 바위에 새겨져 있다. 작사 설강
김성휘, 작곡 김학송, 나훈아의 노래 "강촌에 살고 싶네" 였다. 바위 앞 작은 안내판에 버튼이 하나 있
다. 이 버튼을 누르니 불꺼진 가로등 스피커에서 나훈아의 노래가 흘러 나왔다.
『 날이 새면 물새들이 시름없이 날고
~~~~~~~
중 략
~~~~~~~
조용히 살고파라 강촌에 살고 싶네 』
옛 기억을 더듬어 강촌역 벼랑 밑에 있는 카페를 찾아 갓다. 윌라이브(Will Live)카페이다. 그 때도 있
었는지 기억이 없지만 입구의 마네킹이 요염하게 우리를 맞아 주었다.
카페 안으로 들어서니 발라드 풍의 팝송이 잔잔히 흐르고 무대에는 고풍스런 장신구가 단번에 추억속
으로 몰아 넣는다. 천장과 입구 벽면에는 연인들의 사진으로 가득 매워져 있고 벽과 식탁에는 사랑의
밀어들이 빼곡히 채워져 있다.
창가에는 스프링 노트가 몇권 있다. 이 곳을 찾은 연인들이 사랑을 확인하는 그들만의 이야기를 풀어
놓은 연인 백서이다.
「 우리 결혼한지 1년이 지났네...
자기 군대 있을때 휴가나와서 처음 강촌에 왔지...
그리고, 너무 사랑해요... 」
「 ~~ 헤어져 있던 시간동안 서로의 존재와 소중함을 .........
올해부터 돈 빡시게 모아서 빨리 결혼하장 ^^
「 J & H 사랑의 서약문
첫째, 진실되게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겠습니다.
둘째, 서로의 마음을 아프게하지 말며, 눈물을 흘리게 하지 않겠습니다.
셋째, 서로의 의견을 존중하며 믿음을 간직하겠습니다.
넷째, 결혼해서도 지금처럼 변함없이 늘 행복으로 가득한 부부가 되겠습니다.
다섯째, 지금까지는 서로 다른 길을 걸어 왔지만 먼 훗날 다른 세상까지 한길을 걸어가고 손을
잡으며 함께 하겠습니다. 」
「 사랑해 G 야
지금도... 그리고 먼 훗날 함께할 그날도 ....
널 믿지 못하는 마음 때문에 ...
그리고, 그 마음이 널 아프게 할까봐 걱정하던 마음 때문에...
그동안 소중한 걸 잊고 있었나봐...
많이 사랑하는데 말야..............」
연인들의 알콩달콩한 사랑 이야기들이 4권이나 쓰여 있다. 사랑하며 가슴 아파하는 많은 사연들을 엿
보고 났더니 좋은 수필집 한권을 읽은 느낌이다.
윌카페는 사장님께서 직접 키타 연주와 함께 노래를 한다. 풍부한 감정으로 열정을 다해 노래하시는
모습이 존경스럽다. 추억의 좋은 음악을 들을 수 있어서 윌카페는 나이와 관계없이 찾아 오는 것 같다.
강촌에 낭만이 머무는 카페 1번지, 강촌에 오면 "윌카페"를 반드시 들려 보라고 권하고 싶다.
2006년 11월 11일 국적도 없는 빼빼로데이에 삼악산 산행을 마치고 낭만을 찾아 들린 강촌의 밤은
그렇게 깊어만 갔다.
'Portfolio of my life > 산행일기______'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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