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세월 같은 길을 걸어온 친구를 생각하며....]
너
내가 처음 너를 만났을 때 촌놈이라 했더니
기가 죽어 이틀이나 결강 하던 너
막내 삼촌에게 물려 입은 낡은 외투가 초라해 보이던 날
근사한 베이지색 양복을 입고 뽐내며 내 앞을 오가던 너
축구 하던날, 가볍운 태클로 너의 공을 뺏었더니
성난 몸짓으로 달려와 내 다리를 사정없이 차던 너
중간고사 보던 날
평소에 네 실력을 모두 내게 전수해 주었다고
내가 답안지를 잘쓰고 있는지 확인해야 겠다며
네 앞 자리에서 내가 시험을 보아야 한다던 너
내 흰 머리카락이 보기 싫다고 염색약 사들고 자취방에 찾아와
내 머리를 지지고 볶아대며 깔깔대던 너
화창한 봄날에 나들이 가자고 했더니
고향계신 부모님 문안인사 가야한다고
밝은 미소 지으며 돌아서던 너
기숙사 방문에 부비트랩 설치해 분필가루 뿌렸더니
분말소화기 들고와 하얗게 쏘아 대던 너
자취방에 들어 앉아 할일없이 밥만 축낸다 했더니
시골서 쌀 한가마니 지고 와
먹는거 가지고 사람 구박하지 말라며 집어 던지 던 너
우리 아이 세상 나온던 날
세상에서 첫번째 대면하는 사람이 자기여야 한다며
태어난지 1시간도 안된 쭈글쭈글한 아이보고
세상에서 가장 예쁘고 귀엽다며 입에 침이 마르지 않던 너
군대생활 하던 날
위문 공연한다고 시골동네 처녀들 모두 데려와
나를 기쁘게 해 주던 너
학사장교 시험에 합격하고도 연좌법에 걸려서 이등병으로 입대한 너를 면회 갔을 때
그래도, 씩씩하고 밝은 모습으로 내 앞에 서 주던 너
백수시절.
한잔 술에 취해서 인생을 논하던 매케한 담배연기 자욱한 골방에서
온 세상 고뇌를 혼자서 짊어진 것처럼 초췌한 모습으로
엉금엉금 기어 나오며 일그러진 쓴 웃음을 날려 보내던 너
강원도 철원 이름도 모르는 동네에 너를 찾아 갔던 날
억수 같은 장대비가 쏟아져 오갈 수 없었어도
오랜만에 찾아 온 친구라고 비를 흠뻑 맞으며
산골짜기 매운탕 맛 깔나게 끓여 주던 너
강원도 평창, 유난히도 많은 눈이 내려 허벅지까지 빠지던 날
강원도 특식을 먹어야 한다며
뼈속까지 시려오던 계곡물에 들어가 개구리를 잡아 구워 주던 너
정축년 삼월 열닷세 ('97.3.15)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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