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과 사진이야기

토목기술사인 사진작가 다람이 인생3막에 농부가 되어 직접생산한 포도로 정성드려 빚은 열정과 낭만의 와인 그리고 사진이야기

Achimmaru winery

Portfolio of my life/산행일기______

오대산 비로봉에 서다.

daram93 2006. 9. 4. 11:38

 

우리 일행은 9월1일 오후 서울을 출발해서 강원도 평창 진부면에 있는 '마음이머무는숲'이라는 산장에서

하루 밤을 묶었다. 산 중턱에 자리 잡은 산장은 사방팔방 짙은 녹음에 둘러 쌓여 있고 막바지 여름이 지나

가고 있음을  못내 아쉬워 하고 있는 듯 하다. 

 

산장에 어둠이 드리우자 우리는 기다렸다는 듯이 잔디정원에 숯불을 지피고 삽겹살을 굽기 시작했다. 세

상사는 이야기들이 오고가고, 한잔 술에 밤 이슬 젖는 줄도 모르고 희희낙낙 밤은 깊어만 갔다.

 

별로 중요한 이야기도 아니건만 주당들의 목소리는 커져 갔고, 심각한척 두서 없는 말에 맞짱구를 치며

한잔씩 비우던 술잔이 점점 작아 보일 때쯤 나는 일어나 숙소로 들어가 잠을 청했다.

 

밖에서 들리는 시끄러운 소리에 잠이 깼다. 밖으로 나온 나는 풀잎에 맺힌 이슬을 밟으며 아침 햇살이 잔잔

히 흐르는 숲속을 거닐었다. 숲속은 신선한 풀내음과 찬 공기로 가득했다. 오랜 만에 심호흡을 하며

신선한 공기를 폐까지 깊숙히 들이 마셨다.  지난 밤에 마신 술이 깨는 듯 하다.

 

아침부터 뼛속까지 저려오는 차가운 계곡물에 머리를 감고, 아침식사를 마친 우리는 산행을 시작했다.

 

             

 

 

 

오대산은 차령산맥의 발원지가 되는 곳에 위치하고 있으며 금강산, 지리산, 한라산과 더불어 국내 제일의

명산으로 꼽던 성산이다. 원래 오대산은 중국 산서성 청량산의 별칭으로 신라시대에 자장율사가 당나

라 유학 당시 공부했던 곳이다. 그가 귀국하여 전국을 순례하던 중 태백산맥의 한가운데 있는 산의 형

세를 보고 중국 오대산과 너무나 흡사하여 이 산을 오대산이라 이름 붙였다고 옛문헌에 전하는데 이것이

지금의 오대산이다.

 

   

 

 

우리는 "오대산 상원사 적멸보궁'이라는 금박글자가 씌여 있는 상원사 입구까지 버스로 이동하여 여기서

부터 등반을 시작했다. 등산은  상원사 -> 적멸보궁 -> 비로봉 -> 상왕봉 -> 상원사로 내려오는 코스 선택

하였고 소요시간은 약 5시간 정도 예상했다.

 

상원사는 월정사와 함께 신라 선덕여왕 때 자장율사가 세웠으며, 705년 성덕왕 4년에 중창하였으나

1946년에 불타 1947년에 새로 지은 절이라 한다.   우리는 상원사에 들리지 못했다.

 

적멸보궁(寂滅寶宮) 이란 석가모니의 진실사리를 봉안한 사찰의 법당을 일컫는다. 태백산 정암사와 설악

산 봉정암, 사자산 법흥사, 오대산 월정사, 경남 양산 영취산 통도사의  적멸보궁을 5대 적멸보궁이라는

설명판이 산행로에 이정표와 함께 나란히 서 있다.

 

위 오른쪽  사진은 세조대왕이 목욕할 때 의관을 걸어둔 관대걸이라 한다.  이 관대걸이에는 전설이 전해

져 온다. 세조가 상원사에서 기도하던 어느 날, 오대천의  맑은 물이 너무 좋아서  혼자 목욕을 하고 있었

다.  그 때 지나가던 한 동승에게 등을 밀어줄 것을 부탁하였다.


목욕을 마친 세조는 동승에게  "어디 가든지 임금의 옥체를 씻었다고 말하지 말라" 고 하니 동승은 미소

를 지으며 "어디 가든지 문수보살을 친견했다고 하지 마십시요."  하고는 홀연히 사라져 버렸다.

 

세조가 놀라 주위를 살피니 동승은 간 곳 없고 어느새 자기 몸의 종기가 씻은 듯이 나은 것을 알았다.

이렇듯 문수보살의 가피로 불치병을 치료한 세조는 크게 감격하여 화공을 불러  그 때 만난 동자의 모습

을 그리고 목각상을 조각하게 하니  이 목각상이 바로 상원사의 문수 동자상이며, 목욕을 할때 관대를 걸

어두었던 이 곳이 지금의 관대걸이라고 한다.

 

주변에 있는 나무는 "잎갈나무"라고 하며 수령이 약100년정도 되었다고 한다. 시원스럽게 쭉쭉 뻗은 나무

는 가지 사이로 햇살이 비추어 전설과 함께 신비한 느낌이 든다. 

 

    

 

관대걸이에서 비교적 넓고 평탄한 길을 따라 오르니 중대사자암이라는 표시가 있고 공사용으로 생각되는

모노레일이 설치되어 있다.

 

사진은 산을 오르는 길목에 풍경들이며, 화강석 球에는 "적멸보궁 중대사자암"이라고 암각되어 있고  이

정표 같은 간판에는 "처음처럼 가는 길"이라고 씌여 있다.

 

오른쪽 사진의 이정표는 비가오나 눈이오나 그 자리에 서서 불평도 없이 많은 사람들의 길잡이가 되고 있

다. 오히려 이정표는 산을 찾아와 눈길을 한번씩 주고가는 사람들이 신기한 듯 물그러미 우리를 바라 본

다. 

 

 

 

적멸보궁으로 가는 길에 중대사자암이 있다. 아직 완성되지 않은 것으로 보이며 비탈진 산등선에 계단식

으로 지어진 사찰의 지붕이 이색적이다.

 

이 곳을 지나 조금만 올라가면 월정사 적멸보궁이 있다. 정월사는 산 아래에 위치하고 있는데 얼마 전까

지 걸어서 올라와야 했으나 지금은 도로가 뚫려 자동차로 온다. 우리는 상원사 입구까지 버스로 올라와서

월정사를 지나쳐 왔다.

 

월정사는 문수보살이 머무는 성스러운 땅으로 믿으며,  이 절은 《조선왕조실록》 등 귀중한 사서(史書)

를 보관하던 오대산 사고(史庫)가 있었고, 1464년에 말사인 상원사(上院寺)를 중수한다는 말을 듣고 이를

돕고자 시주물(施主物)과 함께 보내 온 《오대산 상원사 중창권선문(五臺山上院寺重祠勸善文)》이 보관

되어 있다고 한다. 


주요 문화재로는 석가의 사리를 봉안하기 위하여 건립한 8각 9층석탑과 상원사 중창권선문이 있다.

이 밖에 일명 약왕보살상(藥王菩薩像)이라고도 하는 보물 제139호인 석조 보살좌상(菩薩坐像)이 있다.

나는 월정사 적멸보궁을 지나쳐 정상으로 향했다.

 

  

 

출발 지점에서 2시간정도 오르니 비로봉 정상이다. 비로봉은 해발 1,563m이며, 이 근처에서 제일 높은 곳

이라 사방의 굽이치는 능선들이 한눈에 들어 왔다.  뭉게구름이 낮게 떠서 지나는 모습과 산 능선이 어우

러져 한 폭의 동양화를 연상케 한다. 정말 장관이었다. 

 

오대산은 '청학동 소금강' 또는 '연곡 소금강'이라고 불리다가 최근에는 '오대산 소금강'이라고 한다. 오

대산 소금강은 사시사철 아름다우며 단풍이 들면 그 빛깔이 너무 고와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고 한다.

 

   

 

오대산의 야생화와 안내간판이 정상을 주변으로 눈에 많이 띄었다. 비로봉을 지나 상왕봉 방향으로 내려

서면 숲이 울창하게 우거졌고 큰 나무들 사이로 오솔길이 나 있다. 그 나무들 사이로 햇살이 비추고 무성

하게 자란 수풀을 헤치며 걷노라면 잡념이 사라지고 평온한 마음이 든다.

 

      

 

나는 이 곳에서 걸음을 멈추고 숲속에 눌러 앉아 시인의 마을에 밤이 오는 소리 들릴 때까지 사색에 빠지

고 싶었다.  

 

          나는 자연의 친구, 생명의 친구

          상념 끊기지 않는 사색의 시인이라면 좋겠소.

          나는 일몰의 고갯길을 넘어가는 고행의 수도승처럼

          하늘에 비낀 노을 바라보며

          시인의 마을에 밤이 오는 소리 들을 테요.

 

                                                    - 시인의 마을 -

 

                         

 

비로봉을 돌아 조금만 내려오면 커다란 고목 두 그루가 떡 버티고 서 있다. 그 자태에 위용이 서려 있으

며, 두 나무는 산바람에 가볍게 흔들리는 모습이 오랜 벗처럼 다정하게 담소를 나누는 것 같아 보인다.    

 

이 나무는 주목(朱木)이며 비로봉에서 상왕봉 방향으로 내려오면 군락을 이루어 자라고 있다. 주목은 해

발 500~2,500m의 고산지대에서 자란다. 높이는 20m, 지름은 2m에 달할만큼 키큰나무이며 늘 푸르고

가지가 사방으로 퍼져 홍갈색을 띈다.

 

사진에서 보는바와 같이 그 자태가 아름다워 관상용으로 심으며 목재은 가구재료로 쓴다. 이 곳의 주목

은 수령이 500년이나 되었다고 하며, 오대산의 소중한 자연자원으로 관리되고 있다.    

 

 

 

주목의 꽃은 잎겨드랑이에 달리고 단성화이며 4월에 피며, 열매는 9~10월에 붉게 익는다고 한다.  주목은

"살아서 천년, 죽어서 천년을 산다"고 한다. 이는 목질이 단단하고 썩지 않는 좋은 나무라는 뜻이다.

 

그런데, 우수에 의한 토양유실로 뿌리가 노출되는 등 생육장애를 겪고 있어 식생복원 사업을 시행 중이라

는 안내 간판이 있다. 어서 튼튼하게 되어 500년만 더 살았으면 하는 생각이다.

 

  

 

주목 군락지를 지나 40여분 정도 걸어서 상왕봉에 도착했다. 상왕봉은 별도의 표석은 없었고 조그만 돌탑

이 정상임을 짐작케 한다. 이정표에 "상왕봉정상 해발 1491m" 라고 적혀 있다.

 

이 곳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 우리 일행은 하산을 시작했다. 하산 길은 수월했으며 산 능선의 중턱까지 내

려오니 비포장 도로가 나왔다. 이 도로를 따라 6km를 걸어서 상원사 입구까지 내려왔다.

 

                                                                  2006년9월2일     오대산 비로봉을 다녀와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