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아에서 서울로 복귀하는 직항노선이 없어 중간에 카자흐스탄 알마티를 경유하게 되었다. 알마티에서 20시간 25분을 대기해야 한다. 알마티 공항을 가보신 분은 알겠지만 시설이 우리나라 지방공항 수준도 안되고 공항 대기실이 너무 좁다. 여기서 20시간은 고문의 수준이 된다. 그래서, 우리 일행은 알마티 관광을 하기로 하고 공항을 빠져 나왔다. 새벽 4시25분에 도착하여 항공사 제휴 호텔에서 오전 휴식을 취하고 알마티 여행에 들어 갔다.
알마티는 조금 생소할 수 있으나 카자흐스탄의 과거의 수도였고 최대의 도시이다. 인구는 약 120만명정도 되고 텐션산맥의 기슭에 위치하고 있어서 풍경과 경치가 아름다운 도시이다. 알마티는 카자흐스탄어로 사과를 뜻하는 알마Alma 와 아버지를 뜻하는 아타Ata가 합쳐진 말로 '사과의 아버지'라는 뜻을 가진다.
텐산의 심블락
알마티 주요 여행지 중에 하나인 일레 알라타우 국립공원 Ile Alatau National Park 으로 가기로 했다. 카자흐스탄의 알프스라 불리우는 텐산산맥의 한 줄기로써 만년설이 있고 스키장이 있어 관광지로 잘 개발이되어 있다. 우리는 메데우에서 곤돌라를 타고 심볼락 스키장까지 올라 갔다. 전 날 눈이 내려 온통 하얀 설경이 장관이다. 안개까지 끼여 앞이 잘 보이지 않아 풍경은 볼 수가 없었다. 최고의 절경이라고 하는데 너무 아쉬운 생각이다. 스키장에는 많은 스키어들이 있었다. 오늘이 3월31일인데 설산에서 스키를 타는 것을 보니 위도가 높고 고도가 높은 것 같았다. 곤돌라를 세번 갈아타고 스키장 정상까지 갔다. 안개가 벗어지기만을 기다리다가 그냥 내려 왔다. 초봄의 의상을 입어 추워서 더 견딜 수가 없었다. 스키장 매표소까지 내려와 간단하게 요기를 하고 시내로 돌아 왔다.
질료니 바자르 재래시장
심블락에서 시내로 들어와 재래시장 질료니 바자르 Zelyony Bazar에 들렸다. 질료니는 러시아어로 '초록'을 의미하는데 과거에 야채와 과일을 주로 판매하는 시장이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시장에 들어서자 마자 생김새가 한국사람과 아주 많이 닮은 아주머니가 김치와 반찬을 파는 매장이 보였다. 고려인 2세 또는 3세라고 한다.
알마티는 130여개의 소수민족이 살고 있다고 한다. 고려인은 1937년 연해주에서 소련 당국에 의해 강제로 이주되었는데 약 17만명이 수천킬로미터가 넘는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 되었고 카자흐스탄에도 많은 고려인이 이주되었다. 그들은 소련의 감시와 탄압에도 불구하고 강한 정신력과 의지로 살아 남았으며 소수민족들 중에 한국인의 정체성을 유지하고 문화를 계승하고 있었으며, 이 시장에서도 많은 고려인이 성공하여 2세, 3세까지 시장에서 장사를 한다고 한다. 우리를 안내한 가이드가 그들을 존경하는 목소리로 여러번 강조해서 말해 주었다. 이제 시장에서 장사하는 고려인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나도 그들을 존경하고 응원하고 싶어 졌다. 고려인이 만든 김치와 발효음식이 알마티 음식문화를 바꾸기도 했다고 한다.
재래시장을 나와 옛 소련의 청사가 있던 광장을 둘러보고 러시아 정교회도 들렸다.
록의 마지막 영웅, 비토르 최
알마티에는 구소련의 유명한 록가수 빅토르 최의 동상이 공원 입구에 세워져 있다. 20세기에 대중음악의 선두였던 록음악을 통해 소련 젊은이들을 열광케 했던 빅토르 최는 1962년 크즐오르다에서 고려인 아버지와 러시아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 났다. 5살 때 레닌그라드로 이주한 그는 그림과 조각에 뜻을 두고 미술학교에 전학했지만 록그룹에 빠져 "제6병동"이라는 록그룹을 결성했다. 록음악은 소비에트 당국에 저항정신을 불어 넣는다는 이유로 탄압을 당해 대학에서 퇴학을 당했고 제6병동도 해체 되었다. 그러나 그는 1982년 여름 록그룹 "키노"를 다시 결성하여 80년대 소련의 격변기에 자유의식을 담아 내 젊은이들로 부터 크게 호응을 받았다. 빅토르 최는 러시아에서 록 시인이라 불리운다. 그의 음악성 못지 않게 그의 노래와 음악속에 시대성을 담아 냈기 때문이다. 당시 아프간 전쟁에 반대하며 평화를 노래했고 변화를 원하는 젊은이들의 마음을 대변하였으며 그의 노래를 원문으로 불러보면 감탄할 정도여서 학자들도 그의 노래를 최고의 문학작품으로 평가하고 있다. 철학적 메시지나 사회성 고발에 대한 요소보다 더 미학적 요소들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한명의 가수 수준을 넘어 소련 젊은이들의 문화 아이콘이 되었다. 그는 록의 마지막 영웅이 되었다.
그는 고작 28세에 교통사고로 사망하게 된다. 그는 자신의 승용차를 몰고 가던 중 마주오던 버스와 정면충돌하여 현장에서 즉사하고 말았다. 그의 사망소식이 알려지자 소련 전역에서 추모행사가 열렸고 장례식이 여러차례 연기 되기도 하였으며 빅토르를 따라 가겠다고 5명의 팬들이 투신자살하는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30여명의 팬들이 무려 4년동안이나 시묘살이를 했을 정도 였다고 한다. 지금도 매년 8월15일이 되면 그의 동상 앞에 모여 거리 콘서트를 개최하면서 추모행사를 한다고 한다.
시내 한 고급식당에서 마지막 식사를 마치고 공항으로 향했다. 알마티는 고려인 들의 애절한 삶과 강한 의지, 그리고 빅토르 최의 비운의 삶과 천재적 음악성으로 대중의 사랑을 받은 이야기들로 나의 뇌와 가슴을 뜨겁게하는 도시였다.
알마티, 다시 돌아가고 싶은 도시이다.
아침마루와이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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