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경택 감독은 이미 2001년에 <친구>라는 영화로 ‘대박’의 희열이 어떤 것인지를 충분히 맛본 바
있다. 820만이라는 숫자도 결코 만만한 숫자는 아니지 않은가. 그러나 여전히 ‘배가 고픈’ 곽경택 감독은 <태풍>을 기획하는
순간부터 ‘대박 신화’에 대한 야심을 숨기지 않았다. ‘억’ 소리 나는 제작비로 영화를 만드는데 감독 자신이 원하는 것과 일반 대중들이 원하는
것의 간극이 크고 깊다면 이보다 더 비극적인 케이스는 없을 것이다. 다행히도 곽경택 감독은 그 간극이 크지가 않았다. 아무도 시도할 수 없는
비주얼을 보여주면서 동시에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정서로 영화 전체를 포장하기로 했다. 바로 한국인의 마음을 언제 어느 때나 움직일 수 있는
영원한 감동 코드이자 ‘약한 고리’이기도 한 ‘분단과 가족’이다. 여기에 덧붙여 곽경택 감독의 영화에 언제나 흘러넘치는 ‘남성 호르몬’까지.
500만 이상의 관객이 가능 하려면 40대 이상, 그리고 남성들이 움직여줘야 한다는 말이 있는데 <태풍>이 다루고 있는 외양이나
내용은 초대형 블록버스터가 갖추어야 할 모든 것이 다 포함돼 있는 셈이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태풍>이 스토리나 캐릭터 면에서 다소 수학 공식 같은 느낌을 준다는 것이다. ‘두
남자의 피할 수 없는 대결’을 컨셉으로 하는 영화이기 때문에 씬과 강세종의 캐릭터를 극적으로 대비시킬 필요는 분명히 있었으나 씬은 처음부터
끝까지 너무 모든 게 끓어 넘치고, 강세종은 너무 교과서적이고 이상적이어서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정도로 ‘바른 청년’으로 묘사된다. 두 남자가
정반대의 모습으로 보이기는 해도 어쨌든 각각 ‘완벽한 남성 판타지’ 그 자체인 캐릭터라 할 수 있다. 문제는 그게 너무 정형화되어 있다는
것이다.
또한 씬의 누이인 최명주(이미연) 캐릭터는 너무나 명확하게 관객들의 눈물샘을 자극하겠다는 의도로 배치된 인물이다.
최명주는 두 남자간의 대결을 더욱 비극적으로 만들어주는 역할을 한다. 최명주는 냉철한 강세종의 마음을 흔들리게 하여 가차 없이 없애야 할 적인
씬에게 연민을 느끼게 만드는 존재다. ‘망가진 누이’는 ‘망가진 가족’ 더 나아가 ‘망가진 민족’을 상징하기 때문에 심하다 싶을 정도로 비극적인
상황으로 몰아간다. 동생 먹이려고 빵을 훔치다가 강간당하는 장면은 가히 절정이다. 어쨌든 이 영화를 흐르는 정서는 시종일관 한 단계 ‘업’되어
있는 느낌이다.
![](http://wish.kosha.net/concert/images/20051216/main88_04.gif) <태풍>은
액션으로 시작해 감동 드라마로 갔다가 액션으로 마무리되는 흐름을 가지고 있다. 씬이 제이슨호를 탈취하는 장면으로 시작해 강세종이 그를 잡기 위해
쫓는 부분이 전반부의 주요 액션 장면이라면, 씬이 러시아에서 누이와 상봉하면서 그의 비극적인 가족사가 공개되는 것이 중반부 ‘감동 드라마’
부분이다. 그리고 마지막 두개의 태풍이 한반도에 상륙하면서 동시에 ‘태풍호’를 타고 한반도를 날려 버리기 위해 진격하는 씬과 그를 목숨 걸고
저지하기 위해 ‘태풍호’로 진입하는 강세종과의 운명적 마지막 대결이 후반부의 주요 내용이다. ‘액션 블록버스터’라는 이름을 걸고 나온
<태풍>은 ‘태풍호’에서 두 사람이 단검으로 승부하는 마지막 액션 장면을 제외하고는 액션 장면이 아주 새롭거나 강렬한 인상을 남기지
못했다. 감독 스스로도 “영화 초반부 제이슨호 액션 장면과 강세종의 카 체이스 장면이 아쉽다. 제일 나중에 찍었는데 돈이 떨어져서 생각대로
작업하지 못했다”라고 기자 간담회에서 밝힌 바 있다. 그래서 그런지 뭔가 액션 연출이 정교하지 못하고 하다가 만 느낌이 들기도 한다.
익숙하지만 다소 낡은, 그리고 시종일관 영화를 지배하는 ‘과잉’ 정서, 분단과 민족 문제에 대한 다소 피상적이고
감상적인 접근, 공식 같이 설정된 전형적인 캐릭터 등 아쉬운 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태풍>은 일반 관객들의 원하는 것이 무엇일까에
대한 고민과 그 안에서 감독 나름의 새로운 것을 시도하고자 했던 고민의 흔적이 엿보이는 남다른 스케일의 상업 영화임에는 틀림없다. 이젠 감독의
말대로 ‘인간으로서 해야 할 일을 다했으니(盡人事) 이젠 ‘하늘의 뜻을 기다리는(待天命)’일만 남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