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과 사진이야기

토목기술사인 사진작가 다람이 인생3막에 농부가 되어 직접생산한 포도로 정성드려 빚은 열정과 낭만의 와인 그리고 사진이야기

Achimmaru winery

多智濫喜/_____ 느낄 (感)

영행정보_아름다운 동행 속초

daram93 2005. 12. 15. 17:40
새벽 5시, 전날 맞춰놓은 휴대전화 알람이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진즉부터 듣고 있었지만 몸을 움직이기 싫어 이불로 머리를 덮어버렸다. 하지만 이젠 일어나야지 어쩔 수 없다. 지금 서둘지 않으면 분명히 회사에 지각할 것이다.

횡성 고가도로를 질주해 내려오는 자동차 소리는 강약이 있어, 어찌 들으면 파도소리인 것도 같다. 그 소리를 자장가 삼아 잠들었던 밤이 한 순간 같은데, 벌써 일상으로 돌아가야 하는 시간이 돌아온 것이다. 짐은 잠들기 전에 미리 차에 다 실어 놓았다. 우리가족은 몸만 빠져나와 서둘러 집을 향해 달렸다. 1박 2일로 나왔던 여행길이, 하루가 늘어 2박 3일이 되버린 이번 여행의 끝도 이젠 얼마 남지 않았다.

결혼기념일에 떠난 여행

아내를 만나 결혼 한 지 이제 만 9년이 되었다. 새해 달력을 받으면 아내가 제일 먼저 하는 일이 생일과 제삿날 그리고 기념일 등에 동그란 원을 그려 넣는 일인데, 11월 23일은 나와 아내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결혼기념일이다.

토요일 저녁, 속초에 도착했다. 올해로 아홉 번째 결혼기념일을 맞아 떠난 여행의 목적지는 매년 그러했듯이 같은 장소, 바로 이곳 속초다. 속초해수욕장 해변을 끼고 새로 지은 민박집들은 벌써 만원이었다. 하긴 제일 몫 좋은 곳이니 이런 곳은 성수기, 비수기가 없을 것이다. 제일 구석에 있는 민박집에 딱 하나 남은 방을 차지하고 짐을 풀었다.

원래 계획은 파도소리가 들리는 횟집에서 회를 먹으며 바다를 안주삼아 찐하게 한 잔 하려고 했는데, 저녁을 먹고 잠깐 누웠더니 허무하게도 다음날 아침에 되었다. 전날 밀린 피로가 우리에게 한꺼번에 몰려든 모양이다.

아내는 더 누워있고 싶다고 했고, 일찍 일어난 아들은 놀아달라며 나에게 달라붙었다. 할 수없이 주섬주섬 옷을 입고 아들과 함께 일출을 보러 해변으로 나섰다. 수평선은 붉은 기운이 벌써부터 달아올라 바다와 하늘을 물들이고 있었다. 멍하니 서서 얼마를 기다렸을까? 주위는 벌써 환해졌는데 수평선에 넓게 퍼진 구름 때문인지 태양은 보이지 않는다.

기다리던 다른 사람들이 오늘 일출은 보기 틀렸다며 카메라를 가방에 넣고 하나둘 해변에서 떠나기 시작했다. 그런가보다. 하긴 일출 보기가 뭐 쉬운가? 아쉬운 마음에 아들이 삐딱하게 쓴 모자를 푹 눌러주고 방으로 돌아가자며 손을 끌었다. 그런데, 그 순간 주위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바다위로 붉은 태양이 엄지손톱만큼 삐쭉 떠올랐기 때문이다.

올해 들어 아들과 두 번째로 보는 바닷가 일출이다. 한번은 강릉 경포해수욕장에서였다. 아내가 함께 했으면 더 좋았을 것을. 하긴 지금 아내가 일어나지 못하는 것도 다 내 탓이다. 갑자기 결정된 구미 출장길에, 출장이라기보다는 단순히 물건 배달꾼 노릇이었지만, 아내를 데리고 갔다. 밤 9시 30분, 안양에서 출발한 차가 구미의 유명한 전자회사 정문에 도착한 시간이 밤 12시 30분. 그렇게 구미를 찍고 차를 돌려 바로 집으로 돌아오는데 대전까지 와서는 졸음을 참지 못해 휴게소에 드러누워 버렸다.

내일 다시 출근해서 일을 끝내야만 이번 여행길에 문제가 없음을 아는 아내가 나대신 운전을 해줬다. 아내는 내가 출근한 후에 집에서 자고 있으면 문제가 없을 줄 알았는데, 밤에 속초에 와서 저녁만 먹고 잠을 자버린 결과를 낳았고 아직도 일어나지 못하는 불상사를 초래했다.

아침을 먹고 다시 길 위에 섰다. 어디로 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항상 하는 것이지만, 어디를 가든지 상관없다. 가본 길은 여유가 있어 좋고, 낯선 길에는 흥분이 있어 좋다. 그러다가 길을 잃어 집에 못 들어갈 일이 생기거나, 밤길을 헤매어도 혼자가 아니라 우리는 가족이 늘 함께이기 때문에 외롭거나 두렵지 않다. 다만 정해진 사회생활에 맞춰 그 시간대로 따라 가야하는 일이 제일 신경 쓰일 뿐이다. 속초에 오면 항상 들리는 동명항에서 마른 생선 몇 가지를 사고, 영금정에 들렀다가 간성 방향으로 방향을 잡고 차를 몰았다. 어디든지 눈에 들어오는 풍경 속으로 들어가 보리라.

속초에서 10분 정도 달려 봉포항에 도착했다. 조그만 항구에 횟집 촌 건물이 중앙에 자리하고 있고 그 뒤로 방파제가 길게 이어져 있다. 배가 들어온 작업장에서는 아주머니들이 바쁘게 일을 하고 계셨다. 가까이 가서 보니 그물에 양미리가 가득 감겨있었고 일일이 그물을 펴가며 잡은 고기를 떼어내고 계셨다. 조용히 다가갔다가 살며시 훔쳐보고는 걸어 나와 방파제 위에 올라섰다.



지금은 승용차로 이렇게 편하게 여행을 하고 있지만 결혼 전이나 결혼 초, 우리의 교통수단은 주로 고속버스였다. 먼 길을 떠날 때는 주로 야간 심야 버스를 이용해 잠자리와 시간을 벌었었다. 이런 여행 방법은 결혼 전 아내가 혼자 돌아다닐 때 주로 사용하던 방법이었다.

아내는 여자 혼자서 낯선 곳에서 자는 게 불안했기에 주로 심야버스나 기차를 이용해 최대한 장거리 노선을 택하고, 새벽에 도착해 그 주변을 돌아본 후 다시 밤차로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는 방법을 썼었다. 여행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아니 몰랐던 나를 끌고 다닌 아내 덕에 이제는 그래도 제법 길에서 보내는 시간을 좋아하게 되었다. 하지만 아들이 태어난 후로는 승용차 여행만이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 돼버렸다. 시간이 흘러 아이가 더 크면 배낭 하나씩 메고, 버스나 기차, 또는 걷는 여행을 해보고 싶다.



봉평항을 뒤로하고 다시 길을 떠났다. 그리데 갑자기 나타난 '어명기 가옥'이정표를 보고 아내가 급하게 운전대를 돌리는 바람에 뒤에서 놀던 아이와 나는 옆으로 쓰러지고 말았다. 아이는 '엄마! 운전 좀 잘해!'라며 구박을 줬고 아내는 '빠지는 길이 뭐가 이렇게 갑자기 나타나느냐'며 변명을 해댔다.

이 고택을 찾으려면 눈을 크게 뜨고 천천히 길을 올라야한다. 처음 와보는 우리에겐 아무리 봐도 이정표가 없기에 난감했는데 딱 컴퓨터 모니터만한 크기의 이정표가 집 입구 바닥에 놓여있는 걸 발견하고서야 길을 찾았다.



남의 집 마당에 허락도 없이 우리 맘대로 차를 세웠다. 그런데 집에서 풍겨오는 쓸쓸함에 그만 할말을 잃고 말았다. 언제가 집주인이 가끔씩 이곳에서 지내고 간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한동안 발걸음을 안 한 듯, 사람의 체온을 잃은 집은 쓰러져가고 있었다. 전기 계량기의 눈금을 들여다봤다. 역시 움직임이 전혀 없다.

중요민속자료 제131호로 지정돼 있는 이 고택은 1500년대에 처음 지어졌다고 하고, 1750년에 불에 타서 3년에 걸쳐 새로 지었다고 하니, 약 250년 동안 질곡의 삶을 살았던 집이다.

아들은 이곳저곳 신나게 떠들며 돌아다닌다. 주의를 줘보지만 그때뿐 뭐가 신났는지 여기저기 기웃거린다. 혹시나 해서 문을 열어 보았지만 방들은 굳게 잠겨있었고, 다만 뒤뜰로 나가는 문을 만져보니 삐거덕거리는 세월의 소리와 함께 조금 열리기에 들어가 보았다.

혼자서 여기저기 기웃거리고 있는데 갑자기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놀래서 달려가 봤더니 엄지손가락에 나무가시가 박혀버렸다. 아무거나 막 만지지 말라고 했더니 말 안 듣다가 된통 당했다. 아내가 손가락으로 잡고 빼냈지만 잔가시가 살에 파고들어 빠지지 않았다. 서둘러 고택을 빠져나와 근처 가게에서 옷핀을 사다가 살을 조금 긁어 가시를 빼냈다. 애는 울다가 엄마 품에 얼굴을 묻고 눈물을 훔쳤다. 여행을 다니다 보면 이런 저런 사소한 사고들이 일어나지만 2년 전, 아들이 민박집 2층 계단에서 굴러 떨어졌을 때를 생각하면 이런 건 정말 아무것도 아니다.

이제 가던 길을 멈추고 다시 길을 돌려 속초로 내려왔다. 외옹치항으로 가서 어제 못 먹은 회를 점심때 먹을 생각이다. 외옹치항은 대포항과 인접해 있는데, 생긴 시기는 비슷하지만 많이 알려지지 않아서 한산하다. 속초해수욕장 방파제에 있던 활어 회 난전이 없어져서 많이 서운했는데 이런 한적한 곳이 있음에 고마운 생각이 들었다. 아내가 다른 사람들에게는 말하지 말자고 얘기 했는데 어찌 그럴 수 있으랴. 지인들에게 가보라고 권해줘야지.

오?4시, 바닷바람과 함께 시간을 보내니 어느덧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 되었다. 이럴 때마다 고민이 된다. 하루 더 외박을 하고 갈 것이냐, 늦더라도 집으로 돌아갈 것이냐. 그래! 결혼 9주년 기념여행인데 하루 더 쓰자. 좀 좋은 시설의 숙박지와 되도록 집에서 가까운 곳으로 가기 위해 우선 속초를 떠났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우리가 이렇게 일요일에도 여행지에서 하루 더 쉴 수 있는 까닭은 가족이 함께이기 때문이리라. 인생의 동반자! 여행의 동행자! 그 이름은 역시 가족이다.
[자료출처 : 오마이뉴스, 방상철 기자 - 2005.1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