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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핏하면 눈알이 튀어나오고, 눈두덩에서 스멀스멀 기어 나오는 구더기. 거기다가 몸을 가린 드레스 자락을 살짝
들어 올리면, 드러나는 것은 한 점의 살도 없는 뼈 다리뿐이다. 만약 이런 외모의 여자가 당신이 결혼해야 할 신부라면 그 느낌이 어떨까? 보는
즉시 혼비백산해 달아나겠지만 [유령신부 Corpse Bride]에서는 얼마든지 사랑스러운 신부가 될 수 있다. 왜냐하면 이곳은 팀 버튼이 창조한
세계이기 때문이다.
빅토리아 풍의 작은 마을. 생선 통조림 공장을 경영하는 반 도르트 가문의 아들 빅터(조니 뎁)와 몰락한 세습귀족
에버글롯 일가의 딸 빅토리아(에밀리 왓슨)는 서로의 신분과 재산을 필요로 하는 부모들에 이끌려 정략결혼을 하게 된다. 하지만 결혼 리허설에서
빅터는 너무 긴장한 나머지 실수를 연발하고 급기야 쫓겨나 어두운 숲 속에서 혼자 연습한다. 땅 위에 솟아오른 나뭇가지에 정성스럽게 반지를 끼워
주는 것으로 연습을 완벽하게 마무리 할 찰나, 나뭇가지는 갑자기 솟아올라 웨딩드레스를 입은 유령신부(헬레나 본햄 카터)가 된다. 나뭇가지는
결혼을 앞두고 억울하게 죽은 유령신부의 손가락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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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민담을 소재로 스톱 모션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된 팀 버튼(마이크 존슨과 공동감독)의 [유령신부]는
아무래도 10여 년 전 그가 프로듀서를 맡으며 총지휘했던 스톱 모션 애니메이션 [크리스마스 악몽 The Nightmare Before
Christmas]을 떠올리게 만든다. 하지만 10여 년의 세월은 이 분야에서의 발전된 기술을 짐작하게 만들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물론 수공업적
제작방식의 스톱 모션 애니메이션 기술을 나날이 변화, 발전하는 디지털 기술의 속도와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미세한 부분에서 확실히 달라진 점은
눈에 띈다.
예를 들어 [크리스마스 악몽] 때는 캐릭터의 표정 변화를 담기 위해서 일일이 인형들의 머리를 갈아 끼우는 번거로운
작업을 했다면 이번에는 다양한 얼굴 표정을 재현할 수 있는 전동장치를 인형의 머리 안에 삽입했다. 입 모양의 아주 미세한 변화까지 무제한적으로
변형할 | |
수 있는 이 장치는 실제 사람의 표정과 거의 흡사한 느낌을 주는 효과를 만들어낸다. [유령신부]는 또한 수공업적
제작방식과 디지털 기술을 적절히 혼합하는 운용의 묘를 살리기도 했다. 거의 하루가 지나야 작업의 결과를 알 수 있는 필름 대신 디지털 카메라를
사용함으로써 실시간으로 모니터를 통해 작업 결과를 알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는 시시각각 피사체의 움직임을 체크해야 하고 미세한 표정 변화
하나하나를 감지해야 하는 스톱 모션 애니메이션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 넣었다.
이러한 기술적 발전을 통해 창조된 [유령신부]는 일단
시각적인 면에서 합격점을 받기에 부족함이 없다. 그러나 내용적인 측면을 파고든다면 의견은 분분해질 가능성이 농후하다. 물론 팀 버튼은 거의
언제나 기본 이상은 보여주는 감독이다. [유령신부] 역시 그의 상상력이 빛을 발휘하는 부분들로 채워져 있다. 특히 지루하고 단조로운 지상세계와
활기가 넘치는 지하세계를 색채와 카메라의 움직임으로 표현한 것은 역시 팀 버튼답다고 밖에 표현할 길이 없다.
이를테면 지상세계의
주요 장소인 에버글롯 가는 카메라의 움직임과 렌즈의 사용을 최대한 자제하고 전혀 극적이지 않게 묘사하며, 색채 역시 어두운 회색 계통을
사용함으로써 마치 유령의 집을 연상하게 만들었다. 반면 수많은 시체들이 살아 숨쉬는(?) 지하세계는 형형색색의 컬러와 종횡무진으로 빠르게
움직이는 피'사체'들의 역동성으로 표현되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봤을 때 [유령신부]는 2000년대 이후 점점 할리우드 가족주의로 경도되는 듯한 팀 버튼의 변모를 또 한 번 확인하게 만든다. 가정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해야 했던 아버지에 대한 헌사 [빅 피쉬], 결국 돈보다 가족의 소중함을 예찬하는 [찰리와 초콜릿 공장]에 이어 이 영화 역시 산
사람과 죽은 유령이 한 판의 즐거운 카니발을 벌이는 척 하면서 끝내는 유령의 작은 희생 속에 산 사람들의 결혼으로 가족의 탄생을 알리고
있다.
가족의 부재 속에서 애정 결핍에 시달리는 [배트맨]의 주인공들, '정상적인' 가족을 이루기보다는 유사 가족 공동체를 이루고자
했던 [에드 우드], 안온한 중산층 가족의 이데올로기를 산산이 부숴버렸던 [화성침공] 등 1990년대 감독의 전작들을 기억한다면 이것은 좀
당황스러운 일일 수도 있다. 팀 버튼도 나이가 든 것일까? 아니면 가족 이데올로기를 거부했던 이전 영화들에 대한 반작용일까? 가족은 물론
소중하지만 그건 우리가 팀 버튼에게 기대하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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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출처: http://www.culturenews.net, 정영권 영화평론가 -
2005.11.16] | | | |